미국 보란 듯 류샤오보 처남 중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류샤오보(左), 류샤(右)

중국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반체제 민주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의 처남이 사기죄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미·중 정상회담이 8일 끝나자마자 민주인사 가족에 대한 예상을 깬 중형 선고다. 민주화나 인권문제에 관한 한 양보가 있을 수 없다는 중국의 강력한 의지 표현이다.

 10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지에 따르면 베이징(北京) 외곽의 화이러우(懷柔) 법원은 9일 류의 처남인 류후이(劉暉·43)에게 부동산 사기 등의 죄가 인정된다며 중형을 선고했다. 류후이는 베이징 부동산 개발 거래 과정에서 다른 동업자와 함께 사업자금 300만 위안(약 5억3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체포돼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류는 당시 빼돌린 자금을 피해자에게 모두 돌려줬고 수사팀은 이를 정상 참작해 지난해 가을 사건을 종결 처리했었다.

 그러나 올 초 공안당국이 갑자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했고 류후이는 2월 다시 체포됐다. 검찰은 그를 기소해 징역 12∼14년형을 구형했다. 중국 형법은 사기죄의 최고 형량을 10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죄질이 매우 나쁠 경우 판사가 유관기관과 협의해 형량을 늘릴 수는 있다. 그러나 사업추진 과정에서 일어난 사기 사건이고 피해금액이 모두 환불된 경우에는 대부분 집행유예 등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게 관례다.

 류샤오보의 아내 류샤(劉霞·54)는 이날 법정에서 “어떻게 (단순한 사기죄에) 11년을 선고할 수 있나. 정말 참을 수 없다. 아마 이 나라가 미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2010년부터 가택연금 상태인 그는 이날 동생의 재판 방청이 허용돼 판결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지난 2년간 내가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면 (인권에 대한) 어떤 개선도 보이지 않으며 희망도 없다”고 말했다. 류후이에 대한 재조사는 지난해 말 류샤가 가택연금 중 AP통신과 인터뷰를 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SCMP는 분석했다.

 당시 류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남편 류샤오보가 노벨상을 받으면 벌어질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집에 갇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너무나 황당하다. 카프카도 이보다 더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은 쓰지 못할 것”이라며 중국의 인권상황을 비판했다.

 방청객으로 재판을 지켜본 유럽연합(EU)의 한 외교관은 “EU는 류후이에 대한 처벌이 류샤오보의 아내가 처한 상황과 연관됐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은 류샤오보를 석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보편적인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성공과 번영, 정의의 핵심 요소”라며 중국의 인권개선을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둬웨이(多維) 등 비판적 중국 언론은 “시 주석이 인권문제에 관한 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점을 류의 판결을 통해 확실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