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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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희원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국가정보원의 새로운 조타수가 된 남재준 원장은 전임자의 전철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정보 체계를 다잡고 국가안보 수호의 역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남 원장의 애국심과 군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는 유명하다. 하지만 국가정보는 결코 열렬한 애국심과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조직이 결코 아니다.

 남 원장은 먼저 정보수집, 정보분석(정보생산), 비밀공작, 방첩공작이라는 국가정보기구의 4대 임무를 숙지해야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최고의 국가정보를 끊임없이 정책부서에 제공하는 것이다. 국가정보 수장이 정책을 만들거나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가 아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국가정보의 이념을 명백하게 밝힌다. “우리는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 심지어 정책 권고도 하지 않는다(We do not make policy or even make policy recommendations). 그런 일들은 국무부나 국방부 같은 행정부처 소관의 일이다. 우리는 그들 행정부처가 대외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둘째, 남 원장은 국가정보체계에서 국가정보원장의 위상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단적으로 국가정보원장은 정책을 직접 고민해야 하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는 별개의 국가정보 총사령탑(DCI)이다. 바꾸어 말하면 국가정보원이라는 구체적인 정보기구의 수장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모든 국가정보의 총수다. 논리의 당연한 결론으로 경찰, 검찰은 물론이고 기무사령부 등 군 정보기구에 대한 정보통솔력도 확실히 하여 최고의 국가정보를 생산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셋째, 비밀공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비밀공작은 국가정보기구가 예외적으로 국가 정책을 대집행하는 영역이다.

 넷째, 국가정보원은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를 망라한 종합정보기구로서 방첩수사도 담당하는 정보기구 겸 수사기구다. 현대는 비밀을 지킨다는 소극적인 보안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훔쳐가는 것보다 더 빠른 적극적 방첩공작으로 대응해야 한다.

 다섯째, 정치지향성의 직원들은 모두 도태시켜야 한다. 국가정보 요원은 내부 정보는 그 어떤 것이라도 무덤까지 가져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지 기관 내부의 일을 누설하는 직원은 그 자체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스파이로 간주되어 형사처벌되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남 원장은 외부전문가로 정보자문단을 구성해 정보자문을 받아야 한다. 물론 국가정보를 제대로 이해하는 학자나 연구자가 태부족한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단적으로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은 허락해선 안 될 일이었다. 일반 사법 절차에 의한 공개 수사는 정답이 아니다. 국가안보기구에 대한 사법적 업무통제는 미 해외정보감독법원(FISC)처럼 특별법원의 소관으로 하는 제도적 장치가 강구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1차장 대북정보 및 해외국익정보, 2차장 대공수사와 대테러·방첩 등 보안정보, 3차장 사이버·통신 등 과학정보라는 현재의 업무 분장이 최선의 모습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민주성과 개방성에 발맞춘 혁신적인 국가정보체계의 재편에 대한 사전적인 준비도 해야 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역할은 단순명료하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대외세력과 관련된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끊임없이 생산하여 대통령과 정부에 제공하는 역할을 최고조로 수행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남재준 국가정보 호(號)는 특정한 정권의 정보기구가 아니라, 국민과 대한민국의 정보기구가 되어야 한다.

한희원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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