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3사 어떻게 했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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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자영업을 하는 李모(44)씨는 '하이닉스'란 단어만 들어도 식은땀이 흐른다. 李씨는 1999년 8월 10억원을 들여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주식 3만여주를 평균 3만2천원에 샀다.

현대전자가 LG반도체와의 합병설로 한창 뜰 때였다. 그 뒤 주가가 빠질 때마다 李씨는 속을 끓였지만 하이닉스의 추락은 끝이 없었다.

7일 현재 하이닉스의 주가는 2백30원. 주식을 몽땅 팔아봤자 7백여만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달 25일 주주총회에서 21대 1로 감자(減資)가 이뤄지면 그나마도 건질지 불확실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李씨처럼 하이닉스의 주식을 보유한 개인투자자들은 모두 39만명.

하이닉스 주가가 출렁대면서 뛰어든 '막차 승객'도 있지만, 종목이 좋아보여 뛰어든 뒤 주가가 너무 많이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주들도 많다.

소액주주들 처지만 이렇게 불쌍한 것이 아니다. 많은 돈을 빌려준 은행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몇몇 채권단은 아예 빌려준 돈 1조5천억원을 받지 않기로 하고서야 발을 뺄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하이닉스가 LG반도체와의 합병 뒷마무리에 여유가 없었던 2000년 5월 영국 공장 매각대금 1억달러가 어디로 증발했는지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진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현대상선은 대북 송금 의혹 사건 이후 현재까지 주가가 71%나 떨어졌다. 주가만 빠진 게 아니다. 일류기업으로 꼽혔던 현대상선은 대북사업 후유증을 앓으면서 알짜 수입원인 자동차운송 사업부문을 팔아넘겨야 했다.

대북 송금이 이뤄졌다고 파악되는 2000년 6월 이후 현대 계열 주력 3사인 현대상선.하이닉스.현대건설의 소액주주와 채권단이 입은 금전 피해는 어림잡아도 16조원이 넘는다.

주주들은 주가하락으로 돈을 날렸고, 채권단은 출자전환과 대손충당금 설정 등으로 손해를 보았다. 채권단 중엔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공적자금을 대 살려낸 우리은행 같은 은행도 있다. 이런 상황은 아랑곳없이 대북 송금 의혹사건을 어물쩍 넘어가려는 현대와 정치권을 보는 소액주주와 국민들은 분통이 터진다.

◇현대상선=2000년 6월 산업은행에서 4천억원을 빌려 북한에 2천2백35억원을 보내고, 1천억원을 현대건설에 지원했다. 현대상선은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알짜기업이었다.

그룹 모회사인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고 '왕자의 난'으로 그룹이 쪼개진 뒤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할 정도였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북사업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2001년 4월 현대아산에 넘겨줄 때까지 현대상선은 그룹 대북사업도 떠맡았다. 현대상선은 산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회사의 현금 창고였던 자동차운송부문을 팔고,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2000년 6월 현대상선 주가는 6천원이었으나 지난 7일 주가는 1천7백20원에 머물고 있다. 주가 하락률은 71.33%에 달한다.

◇현대건설=2000년 6월 현대건설은 유동성 위기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해 6월 12일 주가는 5천8백원. 그 뒤 현대건설은 서산농장 매각 등 거듭된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듬해인 2001년 6월 채권단으로부터 2조9천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을 받아야 했다.

그에 앞서 5.99대 1의 감자가 실시됐다. 7일 현재 주가는 1천3백원. 감자비율을 감안하면 2백17원에 불과하다. 소액주주들은 90% 이상을 날렸다. 채권단도 출자전환 등에 2조9천억원을 집어넣었다가 주가 하락 등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

◇하이닉스=2000년 6월 12일 하이닉스의 주가는 2만2천원이었다. 7일 주가는 2백30원으로 거의 1백분의 1 수준이다. 주가 하락엔 반도체 경기 불황이 큰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지만, 정몽헌 회장 등 대주주가 설명해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예컨대 2000년 영국 공장 매각대금 증발 의혹이 그런 경우다.

채권단은 2001년 10월 말 3조원의 출자전환과 1조5천억원의 채무탕감을 결정했다. 2002년 12월엔 1조9천억원의 출자전환과 3조원 만기연장을 결의했다.

출자전환해 나중에 받아들 주식이 얼마나 값이 오를지는 미지수지만, 채권단은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우선 면제해준 1조5천억원은 완전히 날린 돈이다.

나중에 받기로 한 3조원에 대해서도 은행들은 모두 80% 이상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대부분의 은행이 올해 안에 1백%까지 쌓을 전망이다. 2조4천억~3조원을 아예 날린 돈으로 치고 장부 정리를 하는 셈이다.

이상렬.주정완 기자

<사진설명>
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북 지원설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자금난에 빠진 현대그룹을 국민 세금을 들여 지원한 것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검제 도입 논란속에 서울 적선동 현대상선 본사에는 연일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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