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전기차로 인류 구하려는 르네상스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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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호 28면

엘론 머스크는 스티브 잡스 이래 인류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올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그야말로 ‘우주적 변화’다. [블룸버그 뉴스]

올 늦봄 극장가를 휩쓴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맨3’. 현실 세계에 그 주인공 ‘토니 스타크’ 같은 인물이 있다면 어떨까. 천재적 두뇌, 원대한 비전, 독설과 카리스마, 여기에 더해 거대한 부(富)와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하는 엄청난 워커 홀릭. 그런 사람이 정말 있다. 스타크 역을 맡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실제 모델 삼아 만났다는 남자, 엘론 머스크(Elon Musk·42)다.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⑨ 테슬라모터스ㆍ스페이스X 창업자 엘론 머스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를 만난 소감을 언론에 이렇게 밝혔다.

“머스크는 열정과 유머, 호기심의 전범(典範)이며 우리 시대의 진정한 르네상스맨이다.”

허풍이랄 수 없는 게 머스크는 미국 언론이 ‘제2의 스티브 잡스’를 논할 때 늘 첫손에 꼽는 인물이다. 또한 ‘공상과학을 현실화하는 남자’로 불릴 만큼 도발적이고 혁신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를 “아이디어로부터 수십억 달러는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그 결과 대단한 부자가 됐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머스크의 재산은 지난달 말 기준 48억 달러(약 5조3700억원)에 이른다. 무엇보다 머스크는 인류의 삶에 근본적 변화를 몰고 올 인물로 꼽힌다. 액면 그대로 ‘우주적 변화’다.

영화 ‘아이언맨’ 주인공이 실제 모델로 삼아
엘론 머스크는 세계 1위 전자 지불 솔루션 회사인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민간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최고기술책임자(CTO)다.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자동차 생산업체인 ‘테슬라 모터스’의 창업자 겸 CEO, 설계자이기도 하다. 더하여 태양광업체 솔라시티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다. 세계 최대 지식콘퍼런스 TED의 리더인 크리스 앤더슨의 말대로, 머스크는 “서로 완전히 다르고 하나같이 엄청난 규모의 분야에서 혁신을 이룬 사람”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걸 꿈꾸고 계획한 때가 대학생 시절이라는 거다.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엔지니어, 어머니는 모델이자 피트니스 전문가인 캐나다인이었다. 공상과학 소설광이었던 그는 열 살 때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히고, 열두 살 때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500달러에 팔았다. 고교 졸업 뒤 캐나다 퀸스대에 진학했다가 2년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와튼비즈니스스쿨 학부 과정에 장학생으로 편입했다. 이어 물리학 학위까지 받는데, 이를 통해 상식과 통념에 기대지 않는 물리학의 비(非)직관적 사고방식을 체화했다고 한다. 그는 올 2월 크리스 앤더슨과의 TED 대담에서도 “양자역학처럼 완전히 새로운 걸 하려면 물리학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시절 그는 세계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지구는 언젠가 종말을 맞을 것이다. 위기를 늦추고 멸종당하지 않기 위해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인터넷’과 ‘청정 에너지’ ‘우주’에 답이 있다고 봤다. 이 셋은 이후 필생의 목표가 된다. 1995년 스탠퍼드대 대학원에 입학한 지 이틀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친동생과 ‘Zip2’라는 온라인 콘텐트 출판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서였다. 돈이 없어 사무실에 담요를 깔고 자고 샤워는 근처 YMCA 회관에서 했다. 99년 당시 유력 검색엔진 기업이던 ‘알타비스타’가 회사를 약 3억4000만 달러에 인수한다. 거금을 손에 쥐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온라인 금융회사 X닷컴(X.com)을 창업했다. 1년 뒤 ‘콘피니티’라는 전자금융 솔루션 회사와 50대 50 비율로 합병한다. 훗날의 페이팔이다. 머스크는 첫 거래를 트기만 하면 10달러를 주는 혁신적 마케팅으로 가입자를 무섭게 늘렸다. 2002년 ‘이베이’가 회사를 15억 달러에 인수한다. 최대주주인 머스크는 억만장자가 됐다. 첫 목표였던 인터넷 분야에서 확고한 족적을 남긴 것이다.

지구인 8만 화성 이주시키는 프로젝트 진행
회사를 팔기 직전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설립했다. 이어 순수 전기차 개발업체인 테슬라 모터스까지 설립한다. “성공에 취해 무모한 짓을 벌인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는 “우주산업과 전기차 개발이야말로 벤처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맞받아쳤다. 양쪽 다 신기술 개발과 이를 통한 비용 절감이 중요한데, 이는 기존 산업계에선 이루기 힘든 목표라고 본 것이다.

마지막 설립한 솔라시티까지 끊임없이 돈을 쏟아붓고 매주 100시간 이상씩 일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존폐의 기로에 몰리기도 했다. 그는 물러서기보다 더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다. 테슬라의 경우 전문경영인 대신 자신이 직접 CEO로 나섰다. 같은 해 스페이스X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대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화물과 우주인을 실어나르는 16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낸다. 지난해 세계 최초 민간 상업로켓인 팰컨 9호를 통해 역시 세계 최초 민간 우주선인 드래건을 ISS와 도킹시키는 데 성공했다. 본격적인 민간 우주 비즈니스 시대를 연 것이다. 20년 안에 지구인 8만 명을 이주시키는 ‘화성 오아시스’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테슬라 또한 세계 최초·최고 양산형 전기차 생산업체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지난해 출시한 ‘모델S’는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가 뽑는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덕분에 테슬라는 올 1분기 첫 흑자를 달성했다. 2008년 첫 출시작인 ‘로드스터’ 때부터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직접 차를 팔러 다닌 머스크의 열정이 큰몫을 했다. 고객 중 한 명인 여배우 캐머런 디아즈는 머스크의 새 여자친구가 됐다. 머스크는 영국 여배우 탈룰라 라일리 등 두 전처와의 사이에 다섯 자녀를 뒀다. 과학교육과 소아건강 분야를 지원하는 머스크재단을 운영하며,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주도하는 기부서약 운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머스크가 각종 인터뷰와 기고문에서 유독 강조하는 것이 있다. “크게 생각하라(You have to think big).” 인류의 역사를 바꿀 통 큰 도전에 나서라는 것이다. 크리스 앤더슨은 “매우 적은 수의 사람만이 디자인과 기술, 사업을 동시에 생각하고 통합할 수 있다. 특히 매우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에 확신을 갖고 추진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머스크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비법을 묻자 머스크는 담백하게 답했다. “글쎄, 모르겠다. 나는 그저 많이 일한다. 진짜, 많이 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영화 속 아이언맨조차 놀라운 성능의 아머슈트를 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잠 안 자고 연구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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