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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갖고 그래?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축재했다고 단죄를 받는 이 사람이 더 이상 재산에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아, 감회가 새롭구먼. 본인이 이렇게 말한 지 벌써 25년이 지났어. 알겠지만 본인은 전두환이야. 그때 내가 있는 거 없는 거 다 내놨잖아. 내가 사는 연희동 집 안채, 두 아들 내외 살던 바깥채, 서초동 땅 200평, 용평 34평짜리 콘도, 골프장 회원권 2개와 예금 23억원 탈탈 털었잖아. 게다가 내가 퇴임 후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을 하면서 요긴하게 쓸 요량으로 여당 총재 때 쓰다 남은 돈 139억원까지 내놨잖아.

 그런데 눈물 머금고 내놓은 거 다 받지도 않고 돌려주더니 툭하면 추징금이니, 추징 시한이니 이거 왜 이래? 왜 나만 갖고 그래? 재산만 버렸나? 본인이 정말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길로 백담사에 갔잖아. 기억 안 나? 내가 그때 한 말. “국민 여러분이 주시는 벌이라면 어떤 고행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 여러분이 가라는 곳이면 조국을 떠나는 것만 아니라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어느 곳이라도 가겠습니다.” 내가 거기서 769일 귀양살이를 했어. 그 혹독한 겨울을 두 번이나 넘겼다고.

 추위보다 분노에 더 떨었어. 어떻게 노태우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잠시 피해 있는 게 함께 사는 길”이라고 사정사정하길래 산에 올라가줬더니 형제들을 다 감옥에 처넣어 조상 제사 모실 사람 하나 없게 만들었잖아. 그래도 본인은 다 용서를 했어. 몇 놈 손봐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배드민턴을 치면서 다 극복했지. 최병렬, 김용갑, 박철언… 하나하나 부르면서 셔틀콕을 후려치다 보니 모든 일이 내게서 비롯됐고, 남 탓 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그렇게 용서를 했는데 왜 나는 용서를 못 받지? 왜 나만 갖고 그래?

 사실 내가 민주주의를 했어요, 내가! 원래는 7년, 7년 이렇게 두 번 하려고 했는데 우리 선배 대통령들이 4년, 4년 두 번 한다고 해놓고는 세 번, 네 번 하려다가 정치 혼란이 생기고 그랬잖아. 나도 그렇게 될까 봐 맘먹고 딱 7년만 한 거야. 후임들에게는 5년씩만 하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돼. 5년은 너무 짧은 것 같거든. 아무튼 이 땅에서 처음으로 민주적인 정권교체의 모범을 보였잖아. 경제도 마찬가지야. 난 군사전문가지만 미국에서 공부한 전문가들 불러서 미국식으로 했어. 우리 경제가 3저 호황을 누린 게 언제야? 다 내 임기 때야. 그런데 왜 나를 미워해? 왜 나만 갖고 그래?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 제일 큰 이유가 1980년 5월 광주 일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요. 96년 재판 과정에서도 항변했고, 2003년 TV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내 생각엔 변함이 없어.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그러니까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 그런데도 내가 그것 때문에 무기징역형까지 받고 감옥살이를 했어. 그 다음엔 어떻게 됐지? 사면해 줬잖아. 내 죄가 그렇게 크다면 수감된 지 751일 만에 사면한다는 게 말이 되나? 하긴 요즘 뭔 방송들 보니 옳은 얘기들 하더군. 북한군이 개입했었다고 말이야. 그런 얘기 진작 좀 하지들 원….

 그런데 그때 피해자들은 그렇다 쳐도 요즘 젊은이들은 왜 그래? 카메라 기자들만 봐도 내 사진은 꼭 삐뚤어지게 찍어요. 인상 나쁘게….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야. 왜 나만 갖고 그래?

 그리고 아무리 민주주의가 좋아도 터프하게 다뤄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내가 대통령 할 때 열린 LA 올림픽에서 우리가 금메달 6개로 10위를 했잖아. 당시론 상상도 하기 어려운 성적이었지. 다음 번 개최국으로서 체면도 섰고. 그게 바로 내가 3~4년 ‘쫀’ 결과야. 그냥 놔뒀으면 그런 결과가 나왔을 성싶어? 턱도 없는 소리야.

 이 정도면 역대 대통령 중 상위권 아닌가? 그런데도 ‘전두환 추징법’을 만드네 마네. 동네 창피하게…. 이거 왜 이래? 3년 전 끝날 추징 시효를 올 10월로 연장시킨 것도 나야. 마지막 재산 압류 막으려고 강연료 300만원 자진납부했다고 씹는 X들도 있지만 돈을 내도 뭐라고 하면 날더러 어쩌라고.

 못 믿겠으면 마당까지 파보라고 했잖아. 그땐 가만 있더니 왜 이제 와서 우리 애까지 들먹여? 재국이가 출판사를 해서 뭔 떼돈을 번다고. 박근혜정부가 공들이는 ‘문화융성’에 일조하는 애야, 걔가. 내 신발 한 짝이라도 찾아내겠다면 정말 제대로 한번 해보든지. 말로만 하려면 여기서 끝내고. 그보다 더한 과거사들도 관대하게 잊고 사는 게 우리 아니었나. 근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이훈범 중앙일보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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