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제의 성공, 그 오해와 진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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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배우기 바람이 불고 있다. 1990년 통독의 후유증을 겪고 있나 했더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어느 날 급부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독일의 성공 이유에 대해 관심이 커졌다. 따져 보면 독일 경제와 사회가 강해진 이유는 그렇게 단선적이지는 않다.

독일은 80년대에는 거의 일본과 함께 주목받는 나라였다. 경제도 그랬고, 세계무대에 떠오른 것도 그랬고, 경상수지 흑자와 환율의 움직임도 비슷했다. 그 당시 엔화와 마르크화는 거의 비슷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독일은 통일을 이루고 유럽 단일통화라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일본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지금 그 결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독일 통일은 역사적인 의미 못지않게 경제적인 의미가 중요하다. 서독은 동독과 통일을 할 때 화폐의 교환비율을 1대1로 했다. 그 당시 암시장에서 서독 통화와 동독 통화의 교환비율이 1대4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동독 통화를 심하게 고평가(통화의 가치를 실제가치보다 높게 평가)시킨 것이다. 이는 서독과 동독을 합친 통일 독일의 통화를 고평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로 인해 동독의 근로자뿐 아니라 독일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실업이 발생했으며 성장률이 하락했다. 92년부터 2005년까지의 성장률이 평균 1.4%에 불과했다. 2003년에는 실업률이 11.6%에 달하고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이 400만 명에 이르렀다.

유로화 통합 뒤 평가절하 효과 누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전쟁 전의 높은 환율 수준(통화의 고평가)으로 복귀하면서 높은 실업률을 겪고 경기침체를 겪은 것과 유사하다. 환율의 고평가는 겉으로는 멋있지만 속으로 골병이 들어간다. 당시 영국은 결국 환율을 평가절하했지만 독일은 우선 환율에 몸을 맞추었다. 성장률이 하락하고 독일의 노동시장은 보다 신축적으로 되었다. 이 부담을 서독이 감당하면서 재정지출이 많아지고 ‘통독은 실패’했다는 인식이 세계시장에 퍼졌다.

급기야 2003년 슈뢰더 총리는 ‘어젠다 2010’을 제시하고 노동시장 유연화, 복지제도 개혁 등을 제안했다. 복지 축소 등에 대해 독일 내의 반대도 많았다. 슈뢰더 총리는 결국 2005년에 물러나고 독일은 연정(聯政)을 구성하게 된다. 독일 경제가 좋아진 지금에 이르러 슈뢰더 총리는 ‘어젠다 2010’이 독일 경쟁력을 높였다고 자평하고 여러 나라도 이를 배우려 하고 있다. 그런데 통독 후 어려움에 빠진 독일을 건져낸 것이 ‘어젠다 2010’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환율을 전쟁 전 수준으로 고평가하고 침체에 빠진 영국이 찾은 해결책이 결국 환율의 평가절하였던 것처럼 독일 역시 환율에서 그 길을 찾았다.

환율 조정의 발단은 99년 유럽 통화 통합(전반적인 확산은 2002년)에서 시작됐다. 이는 동독과 통일할 때 통화를 고평가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사건이었다. 독일은 자신의 건강한 마르크화를 버리고 여러 나라의 통화가 섞여 있는 유로를 받아들이길 꺼렸지만 결과적으로 유럽의 통화 통합은 독일의 일등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여러 유럽 국가와 단일통화를 형성하면 독일은 평가절하의 효과를 누리게 돼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다. 유로화 전체의 가치는 여기에 속한 국가들의 평균치가 반영되므로 독일의 체력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서 이 효과는 더욱 크게 나타났다. 그리스나 스페인 등의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유로화에 같이 묶여 있던 독일도 자연스레 통화의 평가절하 효과를 갖게 된 것이다.
유로화는 도입 초기에는 달러당 0.8유로 수준까지 강세를 보였지만 2001년부터 유로화는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2001~2006년 달러당 1.08유로를 기록하더니, 2007~2012년엔 1.38유로로 거의 27% 절하된 수준을 보였다.

통화 통합은 환율의 절하 효과 이외에 시장을 통합시켜 유럽 국가들을 독일의 내수시장으로 만들어 주었다. 단일통화를 사용하게 되면 환율이 고정돼 무역거래가 활발해진다. 또한 제품의 가격 비교가 용이해지므로 경쟁이 치열해져 경쟁력이 강한 국가에 유리해진다. 독일은 통독으로 고평가된 통화에 맞춰 10년 이상 몸의 군살을 빼고 있다가 이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EU를 내수시장으로 만들어 승승장구

거기에다 동유럽 8개국이 2004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함으로써 시장이 더욱 확대됐다. 동유럽의 고성장은 투자를 증가시켰고 이는 독일 기업 제품 수요를 증가시켰다. 독일은 자본재산업의 비중이 높아 주변국 경제가 성장하면 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효과는 경제지표에서 바로 나타났다. 91~2000년 통틀어 독일의 경상수지는 2000억 달러 적자였지만 2001~2010년의 경상수지는 1조6000억 달러 흑자를 보였다. 독일은 2000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3%였으나 2012년에는 그 비중이 52%로 크게 증가했다. 수출만 하고 살 것 같은 일본이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5% 남짓하다. 이처럼 유럽 통화 통합이 없었더라면 통독의 성공도 담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독일은 선진국이면서도 GDP에서 차지하는 수출의 비중이 50%를 넘는 나라이고, 통화 통합을 통해 유럽 여러 나라를 자신의 내수시장 앞마당으로 만들고 환율을 저평가시켰다. 독일 성공의 본질적인 요인은 내부 개혁인지 외부 제도를 유리하게 만들어간 것인지 고민해 볼 문제다.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독일 배우기를 할 때 귤화위지(橘化爲枳·귤이 탱자가 됨)의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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