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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24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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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슬프도다. 「베르네」장주교가「페롱」권신부에게 이 편지를 쓰고있을 시간에 정부에서는 주교와 신부와 모든 교우를 다 없애려고 결정하였다…. 』병인교난에 대한 서술을「달례」는 대한성교사기에서 이렇게 시작하였다.
이 이른바 병인교난에 대하여「파리」외방전교회에서 발행한『한국에 있어서의 천주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868년 9월까지에는 이미 2천명의 교우가 박해자의 칼날에 쓰러지게 되었다. 1870년에 있어서 떠도는 말에는 죽음의 괴로움을 받은 교우의 수는 8천명이라고 하였고, 이 중에는 피신한 곳에서 굶주림과 위험으로 말미암마 죽은 수가 들어있지 않다.』
한국전역에 걸쳐 순교자의 붉은 피로 뒤덮게한 대교난은 개교이후 세차례 있었다. 그러나1800년에 있었던 제1회교난에 대해서는 정식조사를 할만한 기록이 없어 한명도 열복의 영광을 누린 순교자는 없었다.
제2회교난에는「엔벨」주교의 유명한 기해일기가 남아있어 1925년에 79명의 순교자가 확정되어 이들은 복자의 익호를 받게되었다.
대원군이 1866연에 단행했던 박해로 그중 가장 혹독했던 제3회교난에대한「로마」교황청의 조사로 이제 또다시 우리는 24위의 복자를 갖게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7명의 불신부도 끼어있다.
「가톨릭」에서의 가장 높은 영광은『황야에 소리치는 사자』, 성인이다. 복자는 바로 그다음가는 영광.
이제 우리도 모두 103위의 자랑스럽고도 성스러운 복자를 갖게된 셈이다.
새로이 복자위에 오른 24위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식은 오는10월 6일「로마」「베드로」대성전에에서 거행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성스러운 식전에 참석하기 위하여 1백40명이 떠난다.
『슬프도다! 이제 한국의 땅에는 한분의 신부도 없게 되었다. 동쪽으로 한국땅을 바라보니 머리를 차마 돌이킬 수 없도다. 우리들은 언제나 다시 한국으로 들어 가게될까?』병인교난이 끝날 무렵에「리델」신부는 이렇게 기록했었다. 그러나 그의 걱정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오히려 번창해가기만 했다. 그것은 24위의 새 복자들처럼 어떤 박해에도 굽히지않는 순교자들이 뒤를 끊이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새 빛을 던져주는 것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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