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반닫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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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사동골동품거리를 드나든지 그럭저럭 15년째다. 어설프게 한개 두개 사들고 오기 시작한 것이 이젠 골동품에대한 내 나름대로 안목이 서지않았나 싶다.
이조자기니 하면서 몹시 떠받들지만 나는 보다 실용성을 더 소중히여긴다. 장식만으로 그치는 골동품이기보다 실제 이용하는데에 그 가치는 한층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소박하고 중후한 반닫이에 큰 애착을 갖고 있음은 바로 그때문이다.
올망 졸망한것을 합해 반닫이만 열개를 헤아린다. 옷장·식기장·전축「케이스」·신발장·실함등 골고루 쓰이지않는게 없다. 또는 반닫이 문을 이용해 책상으로 이용할수있게 장치했다. 다정한 벗이나 해외에 나가있는 딸에게 여기서 몇시간씩 편지를 쓴다. 「온고이지신」이란 이를 두고하는 말일 것이다. 내나이의 몇곱을 살아온 이목기는 나무결속에 구수한 대음을 지녀 편지쓰는동안 나로 하여금 포근하고 더욱 정스럽게 만들어준다.
가끔 한두손님을 초대했을때는 반닫이 문위에 간단한 상차림을 한다. 그러면 내가 시중하지않고도 간편한 「뷰페」식 식탁이된다.
사실 이즘 가구라는게 빛깔도 요란하고 번쩍거려 너무 경박스럽다. 이에 비해 옛가구들의 그듬직하고 미더운 맛은 그저 수수하고 인자한 시골사람을 대하는듯하여 더욱 아낀다. 그건 결코 호사스럽지 않지만 값싸고 또 멋이있다.
신식 서랍장들이 물론 정리는 쉽다. 하지만 반닫이 앞에서 차근차근히 물건을 정리할때처럼 즐겁고 차분한 마음가짐을 주진못한다.
아마 반닫이는 장롱과 같은 가구중에서 가장 오래된 궤의 일종일것이다.
그래서 반닫이는 어떤 의걸이 보다도 가장 소중하게 다루는 내실용이었을 것이다. 피륙이라든지 문서·보물등을 간직했더니만큼 튼튼한 것을 위주로 만들었다. 괴목·해송목등 두툼하게켜서 쓰고, 경첩도 튼튼하게 듬성듬성 붙이고 큼직한 자물쇠를 채워놓는다.
놋쇠나 백통장식보다 무쇠장식의 반닫이를 귀하게 여기는것은 그때문일것이다. 나의 취미도 무쇠가 과묵하고 믿음직하여 가장 마음에든다.
장식에는 「제비추리경첩」「반턱곡쇠」「감잡이」「거머러감잡이」「세발장식」쌍희자나 완자무늬의 들쇠바탕등 갖가지 모양이 보이지만 선인들은 장식이 복잡한 대신 단조하고 투박 중후한것을 즐겨왔다.
돈이있고 없고간에 사고싶어질때면 나서는 나는 딸둘 아들하나 내것을 염두에두고 사들인다.
먹감나무장의 주황색과 검정의 오묘한 배색, 아침 점심 저녁 그림자와 내리는 비에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문관석.
모두 나의 귀한 손님들 같다.
가구라는게 마치 사람과 같아 장마때는 끈끈하다가 지금쯤 찬바람이나면 보송보송해진다.
아무리 바빠도 가구닦는것은 내가 직접하고 마음이 산란하면 자꾸 문지르면서 내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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