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드러낸 블록 체제|「자주」희구에의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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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체코」사태 이후의『「유럽」의 우울』이란 따져보면 외세강점 아래에서의 한 약소정권의 시련이나 질식이라는 한 국지적 현실만에서 보다는 보다 넓은 국제정치의 문맥 속에 뿌리를 내리고있다. 그렇다는 것은 전후를 두드러지게 특징지어 온「블록」체제의 질서가 자체 내에 양성돼 온 새로운 역사적 현실과 심한 모순 및 마찰을 빚어 내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응하는 어떠한 새로운 국제적 질서나 권위도 나타나 있지 않고 그러한 사실이 약소국들의 자주적 희구들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소련이 50만의 대군과「탱크」를 이끌고 침공한「체코」가 적어도 명목상 다름 아닌「바르샤바」조약의 일원을 이루는 공산국이 있다는 전예 없는 사실 하나만에서도 우리는 전기한 모순을 보고도 남는다.
소련의 침공을 초래한「체코」의 혁신적 시도가 모두 공산당과 그의 정부 아래서의 것이었다는 점에서「체코」사태는 이에 훨씬 앞서「헝가리」「폴란드」등 동구각국에서 있었던「반공혁명」이란 것과도 그 성격을 달리한 것이었다 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적 상황이 새롭고 다기한 것이면서도 이것이 불러 일으킨 현실적 반응이란 소련과 그의 추종국들의 군사적 침공이라는 종래「블록」질서의 최악의 표현이었다. 침공이래 소련이 체면이나 위신 면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왔다 하더라도「블륵」의 논이에 바탕한 강대국의 이른바「보스」주의가 오늘날 아직도 국제 정치의 한 지배적인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말할 것도 없이「크렘린」이 8·21침공의 구실로 내세워 온 소위 「반혁명의 분쉐」라든지「사회주의 질서의 옹호」 또는 8·26 「모스크바」타협에서 철거의 조건으로 내걸려 온 이른바「체코의 정상화」라는 따위들이 기실 소련의 독선 이상의 것이 되기 어려웠다는 것은 확실했고, 그러한 독선이 타국에 의한 국제적「헌병정법」의 논리가 군사적 실력행사라는 어마어마한 횡포까지를 예사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제재할 효과적인 권위의 부재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고도 한다면 침공직후 이를 가리켜 『모든 약소 국가들에 대한 불안의 태풍』이라고한 영외상「스튜어트」의 말은 그저 외교적「레토리크」(수사)만이 아닌 지금 이 곳에 널리 퍼져 있는 현실적 우려의 표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체코」이후의「유럽」의「무드」가 이와 같이 밝지 못한 것이면서도 그렇다고 아주 암담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침공이라는 태역의 표현이 실상은 동시에 약점이나 쇠퇴의 한 극적인 표현이기도 했다는 근거에서이다.
소련이 미상불 다름아닌 소위 형제국에 대해 침공이란 추태까지를 불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사실은「블록」자체 내에서의 모순이 얼마나 심각해져 왔고 그것이 「통일된 공산권」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수정되어야 할 일인가를 충분히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침공의 넓은 목적의 하나가 그저「체코」일국 내의 개혁 기운뿐만 아니라 동구전역, 나아가서는 소련자체내의 유사한 기류의 제동이라는 데도 있었다는 것은 거의 이의 없는 일반적 해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약간 다른 성격과 규모에서의「루마니아」의 실험이 아직도 소련의 군사적 간섭밖에 서있고 또 앞으로 공산질서의 보다 인간화라는 파견적 요구가 쉽사리 가슴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격려적인 사실로서 주시되고있다.
결국 기존 체제들에 대한 이러한 도전들이 살아남고 성장을 거듭하는 한 각기의 특수한 수요와 희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주적 개혁의 앞날도 (그것이 길고 험난한 아침으로의 여로라 해도)아주 막혀버리지 않을 것이고 막혀버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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