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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부패 논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번 선거에서 패한 「마카파갈」 전 「필리핀」 대통령이 얼마전에 「아시아」 개발은행의 어떤 외국 이사가 「필리핀」의 부패상을 거론했으니 『이런 자는 당장에 추방해야한다』고 주장, 의회에서 논란이 일어나고, 은행측은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는 등 한때 「마닐라」에 소동이 일어낸 일이 있다.
전직 대통령이 사석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과격하게 규탄하는 것은 그만큼 「필리핀」 사람들의 과격한 기질과 주체의식을 나타내는 것이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렇듯 민감하게 반응할 만큼 「필리핀」에서 부패가 심각한 과제로 되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경관 생계 기업에 의존>
「마르코스」 대통령 요청에 따라 미 AID 당국이 조사에 착수, 최근에 제출된 「월튼」보고서는 특히 「필리핀」의 사회적 폭력과 무질서가 경찰 행정의 부패 때문이며 경찰관의 봉급이 횡류됨으로써 경찰의 기능이 마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경찰의 부패는 그러나 다른 행정부와 사기업 분야에까지 널리 퍼져 있는 전반적 부패상에 대한 하나의 표징에 불과한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분석하고 있다.
불충분한 봉급은 법 집행 기관들의 수탈 행위를 정상화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경찰관들은 식량과 연료까지 기업체에 의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선거가 끝나면 경우에 따라선 경찰관 전원이 대체되는 정치 제도가 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직권이 제대로 행사되기는 어렵고 따라서 국민들은 법 집행 과정에서 모종의 서비스와 보호를 기대하는 반면 이 정한 지불 의무를 지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월급이 l2「페소」 (9백원 정도)에 불과할 뿐 아니라 근무 시한의 50%를 시장의 사사로운 일에 할애하고 있다는 어떤 경찰관의 얘기를 인용하고 있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불법적 밀수 이외에 합법을 가장한 밀수 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 상인들은 수입물품의 단가가 실제보다 비싸게 신용장을 개설하고 그 차액으로 개설된 수량 이상을 수입, 세관과 결탁하여 관세를 포탈하고 있으며 외국의 수출업자들도 물건을 팔기 위해 이러한 상인들의 요청대로 가격 조작에 응하고 있다는 얘기.

<범죄율 높아 위기설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야당 출신인 마닐라 시장이 여당의 정치적 공세에 맞서 여당 출신인 푸야트 상원 의장계의 은행이 1억불의 공공 사업 실수요자로 지명 받기 위해 5백만불에 해당하는 4배의 수표를 발행 증회 했다고 폭로하여 지상에서 대서 특필되고 있다.
이렇듯 고위층에서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뿌리깊게 박힌 부패상은 엄청나게 높은 범죄율과 함께 앞으로 10년 안으로 「필리핀」에 어떤 위기를 가져올는지 모른다고 미국의 섹포드 기자는 「워싱턴·데일리·뉴스」지를 통해 예언했다.
그는 이밖에도 부유층의 무책임성, 대토지를 갖는 보수적 「가톨릭」 교회의 토지 개혁에 대한 무관심과 지도자들의 위법 행위 등이 위기 조성의 원인이라고 열거했다.
이 보도는 즉각 필리핀 안에서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여야간에 논전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에선 긍정론까지>
요즈음 필리핀의 매스콤은 부패를 당면 이슈로 삼아 이를 대대적으로 취급 보도하고 있는데 경제 기자 세미나에 강사로 초청된 영국 인도 시론 및 필리핀의 「저널리스트」들은 TV대담 (제목=부패의 경제학)에 부패에 관해 흥미 있는 의견들을 피력했다.
이 대담에서는 우선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교통 경찰관의 2「페소」 (2백원 정도)짜리 수회 행위가 언급되었으며 저임금과 관리들에 주어진 넓은 재량권이 부패의 소지가 된다고 한결같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봉급 인상만으로는 부패를 없애기는커녕 증회해야 할 금액만 늘리게 된다는 의견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부패가 『산업의 거대한 바퀴를 회전시키는 윤활유』이며 따라서 『구매력을 향도하는 사회적 세금』으로서의 긍정적 측면도 지니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치 깡패 없애야 발본>
그러나 부패가 선후진국에 다같이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아시아」의 발전 도상 국가들에서 그 부작용은 특히 심각하다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되었으며 시급히 대책이 강구되어야한다고 결론지어졌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이미 관계 부처에 「월튼」 보고서가 지적한 문제점들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는데 그중에는 반범죄 법안 제정, 특별 기구 설치 및 경찰관 훈련을 위한 학교 설립 등이 포함되어 있다.
어느 외국인 기자는 그러나 부패의 소지인 정치·경제 및 사회적 병폐 등에 대한 근본적 시정 대책 없이 과연 이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게 될지 의문이라고 논평을 했지만-. <박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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