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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랭했던 북극 외교 '강남스타일'이 녹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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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22일 외교부 내 외빈접견실에서 김해용 주미얀마 대사, 구본우 주브라질 대사, 조현 주오스트리아 대사(왼쪽부터)가 ‘공공외교’에 관한 좌담회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해 11월 스웨덴 하파란다에서 열린 북극이사회 실무고위급 회의. 임시옵서버 국가였던 한국은 회의에 끼지 못하고 뒷자리에 앉아서 이사국들의 토론을 지켜봐야 했다. 회의 후 만찬장. 주최 측 누군가가 분위기가 썰렁하다며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었다. 각국의 외교관들이 하나둘 말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썰렁했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다음날 계속된 회의. 이사국들은 “강남스타일 때문에 즐거웠다. 한국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K팝(한국 대중가요), 그리고 스마트 파워를 갖춘 엄청난 나라”라며 한국 대표단을 일으켜 세운 뒤 박수를 보냈다. 옆에 있던 중국과 일본 대표단은 부러운 눈으로 한국 대표단을 쳐다봤다.

북극이사회서 박수 받은 K팝

 6개월이 지난 뒤인 지난달 15일. 한국은 북극이사회 정식옵서버로 진출했다.

 턱시도를 차려 입고 와인 글라스를 부딪치며 추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외교 시대는 저물었다. 김연아·싸이가 만든 한국의 이미지가 외교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는 지금이다. 남미(구본우 브라질 대사), 동남아(김해용 미얀마 대사), 유럽(조현 오스트리아 대사) 등 3개 대륙의 대사를 만나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라는 신(新)외교패러다임에 대해 들어봤다. 공공외교란 정부만을 상대로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예술·지식·미디어·언어·원조 등을 수단으로 상대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는 외교를 말한다.

 -왜 공공외교인가.

 ▶구 대사=“냉전 이후 군사력 같은 하드파워만으론 외교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상대방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문화나 매력 같은 소프트파워가 중요해졌다.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적 위상에 비해 국가 브랜드가 약하다. 국력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기 위해 공공외교가 필요하다.”

 ▶김 대사=“공공외교는 사람 대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양국 구성원 간 유대가 강해지면 여러 이슈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국가에 대한 호감도는 정치·사회·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조 대사=“공공외교는 대중을 통해 국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우리 상품을 익숙하게 해서 팔거나, 북한과의 관계에서 우리를 지지하게 만들 수 있다.”

힐러리 세계 돌며 여성이슈 주도

-해외의 공공외교는 어떤가.

 ▶구 대사=“지금은 공공외교 전쟁 중이다. 중국은 100개국에 340여 개의 공자(孔子)학원을 세우고 대규모 개발원조로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도 애니메이션이나 스시와 같은 문화코드를 앞세워 개성 있는 문화국 이미지를 구축했다. 독일도 괴테 인스티튜트라는 문화원을 통해 전 세계에 자국을 알린다. 노르웨이·캐나다도 평화·인권·자연보호 국가 이미지를 수립해 가며 공공외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 있다.”

 ▶김 대사=“한국은 요즘 한류로 주목받지만 타국에 비해 늦었다. 주요 국가는 공공외교를 강조한 지 10년이 넘었다. 영국의 경우 공부할 장소를 제공하거나 영화 상영, 도서대여를 하며 주민에게 천천히 녹아들었다.”

 ▶조 대사=“미국은 힐러리 클린턴이 전 세계를 누비며 여성·개발이슈 등에서 활약해 외교의 아이돌, 공공외교의 심벌이 됐다. 마침 우리도 박근혜 대통령이 첫 여성대통령이 된 만큼 공공외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공공외교 자산은 .

 ▶김 대사=“압축성장 경험이나 삼성·현대 등 글로벌 기업,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스포츠강국의 이미지, K팝 등이 현대적 자산이다. 태권도·한식·한국어 같은 전통적 자산도 있다.”

민주화 경험, 분단 아픔도 자산

 ▶구 대사=“브라질은 잠재력을 폭발시키기 위해 한국을 배우려고 한다. 특히 우리 교육제도와 과학기술에 높은 평가를 한다. 이런 모멘텀을 잘 활용해 브라질같이 부상하는 국가를 우군으로 활용해야 한다.”

 ▶조 대사=“유럽은 한국의 민주화 경험에 관심이 높다. 한국영화가 유럽에서 각광받는 건 민주화되기까지 어려움을 다룬 영화가 많아서다. 북한과의 대치상황, 분단국의 아픔도 문화자산이 될 수 있다. 유럽은 한국의 비핵화와 국제평화 기여를 높게 평가한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공공외교의 방향은.

 ▶김 대사=“양방향 교류가 중요하다. K팝이나 한류처럼 해외 진출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해외인사를 활용해야 한다. 최근 미스 미얀마가 제주도 홍보대사로 임명된 후 미얀마에서 한국 문화를 적극 알리고 있다. 문화·학술·언론·오피니언 리더를 초청해 그들이 스스로 한국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

 ▶구 대사=“지나치게 아이돌이나 K팝 등 단기적 요소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지속성을 위해 불교나 유교 문화 같은 정신세계를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노르웨이 하면 노벨상이 떠오르는 것처럼 선명한 국가 이미지를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조 대사=“대륙별, 국가별로 전략을 다르게 짜야 한다. 유럽에 문화나 학술·공연을 통한 공공외교가 적절하다면 개도국은 새마을운동 같은 경제발전 모델에 관심이 있다.”

글=정원엽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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