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수장 3인 청와대 별실 흡연모임 김관진도 가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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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청와대를 거쳐 간 역대 대통령들 중엔 애연가가 많았다. 초대 대통령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과 역시 교회 장로 출신으로 올 초까지 청와대를 지켰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곤 모두 애연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담배를 워낙 좋아해 육영수 여사가 담뱃갑을 감춰둘 정도였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새 담배를 까 한 개비를 피우고 주머니에 넣는 버릇이 있어서 항상 주머니에 3~4갑의 담배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최 전 대통령이 국산 담배 ‘한산도’를 즐겨 피우자 외국 대사들 사이에 ‘한산도’가 고급 담배로 통했다는 일화도 있다.

MB땐 애연가 수난시대 … 옥상 올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386 참모들과 맞담배를 피우며 국정 현안을 논의하곤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권양숙 여사의 만류로 담배를 끊은 이후엔 애연가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나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의원(민주당)이 청와대에 들어올 때면 담배를 얻어 피우곤 했다.

 금연파인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엔 애연가들이 수난을 겪기도 했다. 실내는 물론 옥외 계단에서도 흡연을 금지하자 아예 옥상에 간이 흡연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실세로 통하던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도 수시로 담뱃갑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곤 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이런 청와대 내 금연 풍속도가 아이러니하게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리면서 변모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무회의나 관계 장관들이 모이는 서별관회의를 앞두고 애연가 장관들이 회의장 별실을 끽연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그리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흡연실을 자주 애용하는 ‘단골’에 꼽힌다. 공교롭게 외교안보라인의 수장들이다.

 김장수 실장의 경우 집이나 사무실에서 나와 자신의 승용차에 오르면 제일 먼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예 양복 저고리 속주머니에 칫솔과 치약을 넣고 다닐 정도다. 담배를 피운 뒤엔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 양치질을 하는 버릇 때문이다. 18대 국회의원 시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일이 많은데 담배 냄새를 풍기는 게 좋지 않아 생긴 버릇”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특히 대통령에게 보고하거나 청와대 수석과 회의가 잦은 최근엔 담배를 피운 만큼 화장실로 향하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국무회의 전후 옆방서 담배 피우며 소통

 역시 예비역 대장 출신인 남재준 원장도 김 실장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초급 장교 시절부터 남 원장을 지켜봐 왔다는 한 인사는 “골초 중의 골초”라고 평했다. 류길재 장관도 학자들 사이에선 유명한 애연가로 꼽힌다. “각종 모임은 물론이고 글을 구상하거나 논문을 쓸 때도 수시로 담배에 손이 간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다른 장관들이 주로 가느다란 ‘에쎄’ 담배를 주로 애용하고 있는 반면 류 장관은 담배 케이스가 옆으로 열리는 국산 담배 ‘제스트’를 즐겨 피우다 최근 ‘에쎄’로 바꿨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국무회의가 열리는 세종실이나 외교안보관계 장관회의가 열리는 서별관 별실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류 장관은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를 하다 보면 딱딱한 회의에서보다 소통이 잘될 때가 많다”며 “그래서 외교안보 부서 간 회의는 잘되고 있다”고 담배 예찬론을 편 적이 있다. 흡연실이 흡연파 장관끼리의 단합의 장이 된다는 얘기다.

개성 근로자 철수 전에도 여러 차례 회동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최근엔 ‘금연파’인 김관진 국방장관까지 가세했다. 김 장관은 초급장교 시절부터 많은 담배를 피웠지만 별을 단 이후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가끔 분위기를 맞추는 차원에서 담배 연기를 입안에 모았다가 내뱉는 ‘뻐끔 담배’를 피우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담배 양이 늘었다고 한다. 김 장관과 가까운 한 인사는 “최근 북한의 긴장 고조로 담배 생각이 가끔씩 나는 것 같다”며 “외교안보 장관들 대부분이 담배를 피우다 보니 자연히 흡연 횟수도 늘어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올 초 북한의 도발 위협이 가속화되고 개성공단 잠정 폐쇄에까지 이르는 위기 국면이 이어지면서 이들의 흡연실 회동도 잦아졌다. 개성공단 내 한국인 근로자 철수라는 초강경 카드를 빼 들기까지 여러 차례 별실 흡연 모임이 이뤄졌다고 한다.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원의 구조조정 문제와 관련해 남재준 원장에게 시중 여론을 전달해 재검토의 계기가 된 것도 흡연실이었다고 한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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