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폐지 논의만 10년째···값싼 인력이냐, 교육생이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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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만 10년째 지지부진하게 계속되고 있다. 인턴제 폐지를 골자로 한 전공의 수련 개편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에는 의료계가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학회와 병원계·의대생 등 각 의료계 이해 당사자들 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두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폐지를 위한 입법예고를 먼저 치고 나가야 하는지, 폐지 이후 나타날 문제점을 완벽히 보완할 수 있는 대안책 마련을 먼저 내놔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이렇다보니 복지부는 당초 5월에 공표 하려했던 인턴폐지 입법예고를 미뤘다. 55년간 의사수련과정 한 축을 담당했던 인턴제, 이를 바라보는 각계 시선과 폐지를 골자로 한 수련제도 개편의 방향성에 대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병원계, “비행기서 응급분만 시 고개 숙이는 의사 양성할 것”
병원계는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은 인턴제 폐지를 반대한다. 잡무에 치중해 교육적 이득이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보단 장점이 더 많다는 의견이다.


대한병원협회 황인택 감사(을지대학병원장)는 “현재도 전문의 비율이 높은데 너무 전문 과목에만 치우치는 의사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갈수록 의사들이 좁은 분야에만 매몰될까 우려된다. 비행기에서 산모가 출산을 해야 하는 응급상황에서 의사가 모르쇠로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아직은 인턴 제도를 폐지하는 데 준비가 미흡하다는 주장이다. 학생실습이 강화돼야 하지만 여전히 준비가 부족하고, 기존에 인턴이 했던 일은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한 대체인력 대책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황인택 감사는 “대안책이라고 나온 것들이 대부분 피상적”이라며 “전공의를 선발할 때 인턴 성적이 없는데 무엇으로 사람을 뽑을지 세부 계획이 없고 첫해에 NR1을 두 배수 뽑는데 병원들이 그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인턴제 폐지에 대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 감사는 “전문 과목에만 치우치는 의사를 양산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비전문과목의 인력난을 가중시킬 거란 우려도 있다. 그는 “외과계열 등 비인기과목에 대한 경험이 피상적이기 때문에 이를 지망하는 학생이 더욱 적어질 것”이라며 “학생 신분으로 다양한 과를 경험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수련 중도하차도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인턴 인력은 병원 내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된다. 이런 점 때문에 지방병원이 인력 부족에 허덕일 거란 예상도 나온다.

의대생·공보의·전공의, “부작용 대처 할 세부계획이나 예산안이 없다”
당사자인 의대생·전공의·공보의는 폐지에 따른 세부적인 로드맵이 없다고 비판한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조원일 회장은 “인턴제 폐지에 대해 학생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여전히 학생들은 ‘선시행 후보완’이란 복지부 입법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보완책에 대한 방향성만 논의됐지 구체적인 건 아무것도 없다. 애매한 보완책만 제시하면 학생들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우려하는 건 인턴이 담당하던 술기를 임상실습 학생이 담당할 수 있도록 임시 의사면허제도가 도입된다거나, 다른 병원 환경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서브인턴제나 외부 실습 제도를 의대에서 실시하는 등 구체적인 보완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보의들도 인턴제 폐지를 찬성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
대한공보의협의회 김지환 회장은 “공보의 중에는 인턴을 하기 싫어서 폐지를 기대하고 선택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때문에 공보의는 가장 불만과 우려가 많은 그룹”이라며 “가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건 구체적인 재정에 대한 얘기가 빠져 있는 점”이라고 덧붙엿다. 인턴 업무를 보완하기 위한 인력이 얼마나 필요하고, 예산은 어느 정도 드는지에 대한 얘기가 있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 없이 추상적 논의만 많다는 것이다.

전공의도 고민은 같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장성인 정책이사는 “우리는 공식적으로 인턴제 폐지에 반대 입장”이라며 “여전히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장성인 이사는 “인턴 업무에 대한 대체인력 문제는 가장 심각하다”며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인턴폐지 다음 해부터 1년 차가 인턴 업무와 전공의 1년차 업무를 모두 담당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인턴업무 부담을 줄이는 방안으로 PA 등 진료 보조인력이 떠오르고 있지만 현실 도입에서는 여전히 논의와 개선이 필요한 문제란 지적이다.

수련 교육 개편 첫 단추, 각 주체들 중지 모아야
인턴제 폐지는 큰 틀에서 전체 수련교육 개편을 위한 첫 단추다. 10년 이상 논의가 된 만큼 의료계 각 주체들이 중지를 모아야 할 때란 목소리가 높다.

대한의학회 왕규창 부회장은 “지금은 언제 제도를 시행할지 여부가 남아있다. 시행시기를 못 박고 모두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데 논의만 이어지고 시행시기가 없으니 준비 주체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학회 김성훈 수련이사는 “인턴폐지는 수련 제도의 많은 문제점을 개선하는 첫 시발점”이라며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제도가 개선되기 위해 조속히 매듭짓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면 시행하지 못할 제도다. 이미 의대교육 과정에서 상당 부분 커리큘럼이 개편됐다”고 말했다. 보완이 더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먼저 해야 할 것과 뒤따라 와야 할 것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제도를 논의하면서 선배들이 진작에 고쳐주지 왜 우리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지게 했는지 원망도 있었다”며 “지금까지 다양한 논의과정에서 보듯 하나를 고치는 것도 굉장히 힘들다. 대승적 관점에서 인턴제 폐지에 협조하면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복지부 역시 이제 의료계 내부에서 중지를 모으길 바라는 분위기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고득영 과장은 “2011년 의료계 의견을 받아서 TF를 꾸리고, 인턴폐지 쪽으로 의료계의 공감대를 얻었다”며 “어떻게 준비해서, 어느 시점에 시행해야 할지 이 두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많은 이해단체가 관련돼 있고, 서로의 철학과 이익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한 쪽에서 브레이크를 걸면 전체가 브레이크 걸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째든 지금은 상호이해와 협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 문제제기보다 대안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게 절실하다.

복지부는 올해 안으로 인턴 폐지에 관련된 법을 입법예고한다는 계획이다. 고 과장은 “폐지 시점은 전수 조사를 거쳐 의견 수렴 후 입법예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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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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