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습기 없는 남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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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호 30면

얼마 전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어느 게시판에 올려진 고민 글로 제목은 ‘습기 없는 남자’였는데 대강의 내용은 이랬다. 자신의 아버지나 오빠는 다들 성격이 남자답고 시원시원하고 호탕하다.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는 다른 건 다 좋고 마음에 든다. 착하고 성실하고 능력도 있다. 단지 하나 단점이라면 남자가 너무 습기가 부족하다. 고민이다.

처음에 나는 이 여성의 남자친구도 나처럼 피부가 건조한 사람인가 생각했다. 고민 글 아래에 달려있는 수많은 댓글을 보고 비로소 ‘습기’가 ‘숫기’의 오자란 사실을 깨달았다. 글쓴이가 맞춤법을 몰랐을 수도 있고 그냥 단순한 오타에서 비롯된 실수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둘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빠른 속도로 맞춤법의 해체를 주도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휴대전화의 작은 자판은 오타를 빈번하게 양산하고 사람들은 그런 실수를 받아들인다. 수가 불어난 오자들은 일반화되고 세력화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점 맞춤법에 둔감해지거나 혹은 맞춤법이 불편하다고 느낀다. 맞춤법은 양보를 거듭하다 결국 해체되거나 소멸된다는 식으로. 물론 정말 그럴 리야 없겠지만.

‘습기 없는 남자’ 글 아래에는 유사한 오자의 예를 소개하는 댓글이 마치 감자알처럼 댕글댕글 달려있었다. 오자의 특성은 우선 소리 나는 대로 적고, 그렇게 적은 글자의 뜻이 잘 통하지 않으면 자신이 짐작하는 글자로 바꾸고 최대한 간소하게 줄이는 것 같다. 몇 개만 소개하면 이렇다. “남친이 습기가 없다니 왜간장 좀 태우겠군요.” “큰 병입니다. 병원에 데리고 가보세요. 어로봉카드는 있죠?” “남의 일에 일해라 절해라 할 수는 없지만 습기 없는 남자와는 헤어지는 게 좋아요.” “습기에 대해 말하는 건 일종의 임신공격입니다.” “남친이 습기가 없다니 결혼은 숲으로 돌아가겠군요.” 등등.

나는 고민 글과 댓글을 보며 웃었다. 웃었지만 나도 곧잘 맞춤법을 틀리고 오탈자를 남발한다. 나름대로 주의한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실수로 오타를 칠 때도 있고 아예 정확한 맞춤법을 알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니 웃음 끝이 씁쓸하다.

아직도 나는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에 익숙지 않다. 점점 나아지긴 하겠지만 앞으로도 능숙해지긴 어려울 것이다. 내 손가락은 남자 어른의 것으로는 작은 편에 속하는데 휴대전화 자판은 너무 작고 좁다. 나는 자주 다른 글자를 누른다. 그나마 잘못을 알아차렸을 때는 고치면 되지만 모르고 그냥 발송해 버리면 낭패다.

한번은 같은 부서 동료 직원의 생일에 축하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생리 축하합니다. 특별한 하루 보내세요.” 언제나 실수는 저지른 다음에야 깨닫는 안타까움이다. 오타라고 변명과 사과의 문자를 다시 보내려는데 동료 직원으로부터 답 문자가 왔다. “부장님, 오늘이 어떻게 제 생리인지 알고 축하해 주시는군요. 평소 좋아하던 부장님께 뜻밖의 축하를 받았으니 이미 특별한 하루를 보낸 셈입니다. 항상 격려해 주고 이끌어주는 부장님께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는데…. 부장님 정말 간사합니다.”

동료는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가족과 함께 강원도 평창 휴양림에서 펜션을 한다면서. 그러니까 정말 숲으로 돌아간 것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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