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을 마술처럼 연주 … '건반 앞 수도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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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호 27면

당 타이손(둘째 줄 왼쪽 넷째)이 1993년 베트남 중부 쑤안 푸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1972년 ‘하노이 폭격’ 때 이 마을에 피신해 있었다. 당 타이손은 종전 4년 만인 1980년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thecannonandflowermovie.com]

베트남에는 두 사람의 영웅이 있다. 이건 필자 생각이지만 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독립과 통일의 영웅 호찌민. 1990년대 초에 하노이의 호찌민기념관 앞에서 어슬렁거리는데 참배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줄 서 있는 걸 보고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젊은 참배객들 표정에서 엄숙한 가운데도 만만찮은 긍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유감이지만 호찌민에 버금가는 인물은 없는 것 같다.

[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 당 타이손

또 한 사람의 영웅은 ‘건반 앞의 수도승’ 당 타이손(Dang Thai Son·1958~ )이다. 80년 아시아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그가 쌓아온 연주이력은 일일이 열거할 지면이 없다. 베트남전쟁의 포연이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시기여서 이 콩쿠르 수상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던 것 같다. 천재로 일컬어지던 유고 출신의 신예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1958~ )의 탈락은 또 다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콩쿠르는 두 사람의 승자를 탄생시켰다. 승자보다 탈락자 포고렐리치의 인기가 승자를 압도했다. 포고렐리치의 서울 공연이 당 타이손보다 훨씬 먼저 성사된 사실로도 그 사정을 알 수 있다. 당 타이손은 이름조차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동남아 빈국 출신 피아니스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주위에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오랜 기간 그의 음반 한 장 구입하지 않았고 연주를 듣고 싶다는 생각조차 한 일이 없다. 포고렐리치 음반은 이미 초기에 몇 장씩 구입했고 비록 한때에 그쳤지만 그의 천재적 연주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쇼팽 콩쿠르를 계기로 ‘건반의 이단아’라는 호칭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한 포고렐리치는 진정한 승자였다. 입장이 역전되는 이런 사례는 두 번 다시 되풀이되기 어려운 특이한 사례일 것이다. 템포나 터치의 유연성에서 기존의 정형화되다시피 한 연주 양식을 깨트리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의 연주는 도발적이며 창조적이었다. 아르헤리치가 그에게 유난히 집착한 것도 관록이 붙을수록 점점 연주에서 도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르헤리치 자신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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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타이손의 쇼팽 연주를 들은 것은 아주 최근 일이다. 『쇼팽에게 가장 사랑받은 피아니스트』라는 책자까지 발간될 정도로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그의 연주를 이제야 듣다니! ‘베트남 사람이 잘하면 얼마나….’ 이런 비뚤어진 잠재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베트남뿐만 아니라 근래 연주자를 다수 배출하는 중국·일본에 대해서도 비슷한 선입견은 있다.

당 타이손의 쇼팽 협주곡 2번을 처음 들었다. ‘18세기 오케스트라’라는 특이한 이름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이고 18세기 악기인 포르테 피아노를 사용한 연주다. 현대 피아노에 비하면 당연히 소리가 딱딱하고 공명도 떨어진다. 어느 감상자가 당 타이손 연주를 무채색(無彩色) 연주라고 평한 걸 들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포르테 피아노 사용은 걸맞은지도 모르겠다. 나는 처음 들은 이 연주로 ‘이제부터 베트남 사람을 만나면 모자를 벗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어버렸다. 나는 그 연주를 몇 차례나 반복해서 들었다. 쇼팽의 두 개의 협주곡 가운데 아무래도 1번이 짜임새도 있고 감각적 흡인력이 강한 2악장 로만체의 매력도 있어서 더욱 선호되는 것은 사실이다. 2번은 좀 느슨하고 때로는 지루한 느낌도 준다. 두 작품의 주제를 놓고 이런저런 평가가 있는데 내밀한 동기는 일란성 쌍생아처럼 유사하다. 그 때문에 더욱 풍성한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는 2번이 소외되는 감이 있다. 당 타이손의 연주는 2번의 풍성한 디테일을 분명한 공명으로 잘 살려내 조국과 연인을 향한 비원(悲願)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마주르카(Mazurka in a minor, Op.17, No.4ㆍ작은 사진)를 들어보면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호칭이 그에게는 아주 자연스럽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폴란드 농민생활에서 탄생한 무곡을 바탕으로 작곡된 이 음악은 폴란드 농민생활을 모르고는 연주가 쉽지 않다는 말도 있다. 쉽게 포착하기 힘든 ‘참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이 마치 수틀에 수놓은 듯이 이 마주르카에 그려져 있는데 그것을 잘 살려내는 연주가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이 짧은 곡을 연주하는 연주가의 솜씨는 거의 마술 수준이다. 그의 핑거링은 그 자체가 일급 무용수의 손놀림처럼 섬세하고 매끄럽다. 바람에 나부끼는 아오자이 자락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그는 언제나 무대에서 인민복 같은 검은색 복장을 하고 엄숙한 자세로 연주에 임한다. 이야기를 나눌 때는 명랑하게 소리 내어 웃기도 하는데 무대에서는 절대로 웃음을 보이지 않는다. 건반 앞에 앉으면 거인이 된다. 그는 수도승 같기도 하다. 수도하는 자세로 연주에 임하는 그의 무대 매너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전쟁의 포화 속에서 널빤지에 건반을 그려놓고 어렵게 피아노 연주를 배우던 이력이 음악 앞에서 그를 그토록 엄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르몽드’지는 “범접하기 어려운 피아니스트”라고 평했는데 피아노 앞에서 거인이 되는 그에 대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연주의 기교와 해석도 중요하지만 나는 당 타이손의 검소·겸손 등 그가 풍겨주는 이런 인성(人性)에 더욱 끌린다. 따져보면 그런 인성도 연주 속에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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