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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한국 미술사의 큰 별 우현을 다시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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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현 고유섭 전집
고유섭 지음, 열화당
전10권, 각 152~536쪽 2만~4만원

우현(又玄) 고유섭(1905~44)은 한국 미술사학의 개척자다. 일제강점기 경성제대에서 조선인 처음으로 미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일하며 신생 학문의 주춧돌을 놓고 사람을 키웠다. ‘개성 3걸’로 불리며 박물관학파를 이룬 황수영(1918~2012), 진홍섭(1918~2011), 최순우(1916~84)가 그의 1대 제자다. 서른아홉 짧은 삶에 미술사 전 분야에 걸쳐 남긴 수십 권 분량의 원고는 지금 읽어도 뒤처지지 않는 사실과 문제의식으로 가득하다.

우현 고유섭의 자화상

  열화당이 2003년 기획해 2005년 우현의 탄신 100년을 맞아 시작한 전집 발간의 여정이 10년 만에 전 10권 완간으로 마무리됐다. 제1권 조선미술사부터 제10권 조선 금속학 초고까지 한국미에 숨과 혼을 불어넣은 우현의 정신은 인문학이 저잣거리의 상품처럼 팔리는 오늘의 세태를 돌아보게 만드는 등불이다. 긴 세월 거대한 산맥을 넘는 듯한 작업에 매달려온 이기웅 열화당 대표는 “사십 년을 채 살지 못하신 그 어른께서 일구신 미학과 미술사를 정리한 이 전집은 숭례문의 복원에 맞먹는 가치가 있다”고 자평했다.

  전집 완간을 기념해 지난달 강릉 선교장에서 제2회 선교장 포럼을 겸해 열린 담론회에서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를 “우리나라 최초로 제대로 된 미술사학에 대한 인식과 그 방법론을 구사한 저술을 남기신 분”이라고 기렸다. 권영필 상지대 초빙교수는 “우현이 한국미술의 한 개념으로 정의한 ‘무계획의 계획’도 실제는 우리 선조의 미감이 무계획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바탕에서 이뤄진 점을 오히려 강조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나는 지금 조선의 고미술을 관조하고 있다.(…) 만일에 그것이 한쪽의 ‘고상한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면, ‘장부의 일생’을 어찌 헛되이 그곳에 바치고 말 것이냐.”(제9권 수상 기행 일기 시 89쪽)

 대장부의 삶을 송두리째 불살라 한국 미술의 고갱이를 만천하에 두루 알리겠다는 선생의 목소리가 오늘 책 속에서 우렁우렁하다. “진정한 예술은 곧 진정한 생명 그 자체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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