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자가 비리 혐의로 구속된 서남대와 한려대는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학이다. 전국 4년제 165개 대를 취업률, 학생 충원율 등으로 평가해 순위를 매긴 뒤 하위 15%를 잘라내 불이익을 주는데, 여기에 속해 재정 지원을 못 받게 된 건 아니다. 놀랍게도 정부 평가에서 두 학교는 하위 15%에 속하기는커녕 중위권 성적을 냈다. 대신 두 학교는 학교 정보를 공개하는 공시를 허위로 했다는 이유로 재정 지원 제한을 받게 됐다.
그래서 두 대학이 어떻게 중위권 성적을 받게 됐는지 알아봤다. 이상하게도 두 대학엔 평가지표 값 가운데 시간강사 비율이나 등록금 인상률 등이 없었다. 대학이 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공란이 된 값(missing value)은 평균 값으로 입력됐다. 대학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평균 값을 넣어준 것이었다. 최하의 점수를 준 게 아니라 평균을 주다 보니 엉뚱하게도 두 대학은 몇 개 평가지표에서 득을 보게 됐다.
이뿐만 아니다. 국립대엔 법인 전입금이 없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걸러내는 평가지표엔 법인 전입금, 법정 부담금의 지표가 있다. 국립대는 그럼 이 두 지표에서는 어떻게 평가됐을까. 앞서 사립대인 두 대학의 경우처럼 평균 값으로 처리됐다. 국립대가 평가 순위에 밀려 재정 지원 제한을 받는다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겠으나 국립대 입장에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평가를 담당하는 정부 쪽 사람들이 알아서 척척 평균 값을 넣어주니까.
평균, 그중에서도 산술평균은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요즘 아이들의 성적표엔 과목 평균, 전체 석차는 없어졌으나 수능에서도 평균은 활용된다. 과목마다 평균과 표준편차를 구해 표준점수(Z점수)를 낼 수 있으며 등급도 구한다. 입사시험, 언론사 대학평가, 정부 재정 지원 평가에서도 평균은 중요하다. 평균을 구하려면 여러 다양한 점수를 먼저 합해야 한다. 면접시험 점수와 필기시험 점수를 합해 합격자를 낼 때도 평균은 내지 않지만 합산은 한다. 그래야 어느 누가 가장 많은 점수를 얻었는지 알 수 있다.
A학생과 B학생이 있다. 국어·영어·수학·과학 점수가 나왔다. A는 21, 1, 1, 1점을 받았다. B는 6, 6, 6, 6 점을 받았다. 합산하면 둘 다 24점으로 같고 평균은 6점이다. 이제 두 학생 중 한 명을 선택하려고 한다. 누굴 선택해야 할까. 평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
더하기 합산과 평균의 맹점은 특정 분야나 지표의 점수가 좋지 않다고 해도 다른 분야나 지표의 점수가 이를 덮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몇 년 전부터 인간개발지수(HDI)를 산출할 때 더하기 합산과 산술평균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곱하기 합산과 기하평균을 쓴다. 합산은 더하기만 있는 게 아니다. 곱셈 합산과 기하평균을 쓰면 A학생과 B학생 중 B학생이 더 우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대학 어디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몰랐기 때문인지, 공무원들의 심기를 건드리기 싫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객관화된 자료를 기초로 점수를 합산해 평균을 낸 뒤 석차를 구했기 때문이다. 숫자의 강력한 힘에 국회의원들도 이의 제기를 못하는 셈이다. 진보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총장 직선제 폐지 여부가 평가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분석해 자료를 낸 일이 있다. 국회의원 중에서 그가 아마 가장 문제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본다. 그가 분석한 대로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를 평가지표에 넣거나 뺄 때 국립대끼리 순위는 확 달라진다. 전체 합산 점수, 평균에 영향을 미쳐 표준점수화된 총점·순위가 달라진다. 순위에 따라 정부 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된다.
평균은 함정이다. 우리가 파놓은 고정관념에 빠져 그 안에 있는 게 아주 당연한 듯 여기게 하는 것이다. 그런 함정에 빠질 때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부르는 점수나 순위에 항거할 수 없다.
강홍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