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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74) 악수와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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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88년 2월 전북 군산의 시민과 악수하고 있는 고건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후보(왼쪽). 그해 4월 26일 치러진 제13대 총선거에서 그는 평화민주당 채영석 후보에게 득표에서 뒤져 재선에 실패했다. [사진 고건 전 총리]

내 지역구였던 전북 군산-옥구는 소선거구제가 시행되면서 2개 지역구로 나뉘었다. 1988년 제13대 총선거에서 나는 여당인 민주정의당 후보로 군산에 출마했다. 선거운동을 하는데 예상치 못한 역풍이 불었다. 8년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이 곳곳에 뿌려졌고 노태우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이 전남·전북을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평민당의 상징 색깔인 황색을 빗대 ‘황색 바람’, ‘황사 바람’이라고 불렸다.

 나도 황색 바람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악수를 하면 민심이 보인다. 현장에 나갈 때마다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악수를 피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연고가 있는 옥구가 아닌 군산을 선택한 것도 패착이었다. 그래도 여론조사에서 50~60% 지지율이 나왔다. ‘나는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반대해 사표를 던졌는데…. 나만은 황사 바람을 피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어느 날 경성고무란 회사에 선거운동을 하러 갔다. 종업원 2000여 명이 모두 유권자였다. 대부분의 직원이 여성이었다. 구내식당 입구에 서서 한 사람씩 공손히 악수한 후 식판을 받아 들고 함께 식사도 했다. 전남도청에서 회의가 열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경성고무의 넓은 부지를 걸어 나가는데 개수대가 보였다. 회의 생각만 하고 무심코 손을 씻었다.

 그날 저녁 도청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당원 한 명이 큰일 났다며 나에게 보고를 했다. 내가 손을 씻는 모습을 경성고무 직원 몇몇이 봤다고 했다. ‘손을 씻으려면 뭐 하러 악수를 했느냐’며 비난이 쏟아졌다는 얘기였다. 2000여 명과 악수한 일이 물거품이 됐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군산 민심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악재는 한꺼번에 몰아쳤다. 선거 사나흘 앞두고 김대중 전 평민당 총재가 군산에 지지 유세를 하러 왔다. 여당 후보인 나와 평민당 채영석·무소속 강근호 후보 세 명이 경합하고 있었다. 군산역 앞에 단상이 마련됐고 그 위에서 김 전 총재가 채 후보와 강 후보의 손을 맞잡았다. 그는 유세 인파의 함성 속에 야당 후보를 채 후보로 단일화하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1 대 2의 경쟁이 1 대 1로 바뀌었다.

 그해 4월 26일 13대 총선에서 지역구 224명, 전국구 75명 의원이 당선됐다. 소선거구제가 불러온 정치권의 변화는 폭발적이었다. 총선에 앞서 선거구제 개정안을 논의할 때 김영삼 총재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은 1차 협상에서 중·대선거구제에 합의했다. 2차 협상 과정에서 당론을 소선거구제로 바꿨다. 그런데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첫 총선에서 민주당은 제1야당에서 제2야당으로 밀렸다. 평민당은 호남 지역구를 싹쓸이하며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여당인 민정당은 원내 제1당 자리를 유지했지만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노태우 정부의 정국 운영은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소선거구제가 불러온 정계 개편은 3당 통합에 의한 민주자유당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만일 김영삼 총재의 민주당이 제1야당 지위를 유지했다면 굳이 민정당·공화당과 더불어 90년 1월 22일 3당 합당에 참여했을까.

 선거구제 개편 실무를 맡았던 나도 13대 총선에서 역풍을 맞았다. 단일화한 채 후보가 승리했다. 나는 낙선했고 재선에 실패했다. 20대에 고등고시에 낙방한 이후 두 번째로 맛본 큰 실패였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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