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고전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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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소월은 흥에 겨위 노래를 읊는다. 3일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서울에 쏟아진 비는 l백21.7밀리나된다. 서울의갈증은 단숨에 풀렸다. 그러나 바로 이웃도시인 인천엔 불과37.7밀리가 내렸을 뿐이다. 호남·영남·영동은 그저 입술을 축일 정도에 그쳤다.
그나마 한반도 남단에서 서서히 진군중이던 장마전선은 제주도에도 못 닿아 일본 「규슈」로 후퇴, 타는대지는 소나기에나 기대를 걸수밖에 없게되었다. 소나기는 역시 바람의 장난스러운 운동이 있어야 내린다. 낮의 강한 햇볕이 대지를 뜨겁게 만들면 상승기류가 발끈한다. 이것이 적란운으로 뭉쳐 비를 퍼붓는 것이다.
그러나 적난운이 집합하는 상공의 대기가 요즘은 이상해졌다.
기상학자들은 옛날의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2백여개나넘는 이제까지의 핵실험들은 하늘을 멍들게 만들어 구름이 가는 길을 가로막는 현상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긴 근년엔 비의 고전미도없어진것 같다. 온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그래서 「레인코트」를 입은 신사가 한껏 비의 멋을 즐기는 그런 비는 아니다. 비가 온다하면 우르르 탕탕집중호우로 쏟아져 홍수가나고, 금방 하늘은 씻은듯이 개는 것이다.
어느새 비의 「이미지」는 하늘의 저수지가 갈라진듯한 폭우로 돌변했다. 나뭇잎을 촉촉이 적시고 대지를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비는 요즘 도무지 볼수없다. 우박조로 금년엔 은행알만한 크기로 세차례나 퍼부어 집중사격을 연상시켰던 일이 지방엔 있었다.
그러나 태풍의 광란은 막기힘들어도 비의 폭력은 인공으로 얼마든지 예방 할수있는 것을 알아야한다.
야수같이난폭하게밀려드는 홍수도 미국의 TVA같은 「댐」에 가두어 놓으면 유순한 양과 같이 되는것을 보라.
서울에 금싸라기같이 쏟아진 비도 결국은 한강물에 두둥실 실려 바다로 가고 말 생각을 하면 시원하던 목도 금방 마른다. 폭우를 유순한 양으로 만드는 건설계획은 정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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