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의 기능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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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앞을 볼 수 없는 실명한 젊은이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다섯 살 때부터 빛을 잃고 자라온 장님 백희현씨 (29·충북중원군가금면누암리1선5) 가 고장난 시계 「라디오」등 정밀기계를 숙련공 못지 않게 고치고 「기타」도 만들어 화제.
백태복씨 (60)의 둘째 아들인 백씨는 다섯 살 때 심한 열병을 앓은 끝에 실명, 남들이 다 배우는 국민학교 교육조차 받을 수 없었다. 또 집안식구들이 모두 농사일에 바빠도 거들 수조차 없는 노릇.
그래도 백씨는 무엇인가 도와주고 싶었다. 철이 들면서 그는 집안에서 쓸모 없이 굴러다니는 빗자루를 주워 고쳤고 찬장, 장롱을 비롯해서 고장난 자물쇠 농기구를 곧잘 고쳐 아버지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나도 성한 사람처럼 일해 봐야겠다 내 손으로 광명을 찾겠다』는 결심이 들기 시작했다. 17세 때 무렵 같다고 백씨는 지난날을 더듬었다. 예민한 손끝의 촉감으로 더듬고 추리력을 가다듬어 점차 어려운 기계의 손질에 손을 대봤다. 동네에서 고치지 못해 버려 두고 있는 자봉틀을 가져다 하루만에 고쳤다. 그의 손재주 소문은 차츰 온 마을뿐만 아니라 군내에 모두 번졌다. 겨울에는 나막신을 깎아 이웃 노인들에게 선사까지 했고.
그가 다루기 어려운 시계를 고치기 시작한 것은 22세 때. 그의 형 철현씨 (35)의 고장난 손목시계를 이틀만에 고쳐낸 다음부터의 일이었다. 『시간을 맞출 때는 유리를 끼우지 않고 먼저 손으로 초침을 만져가며 조정합니다. 』 그의 시계에 대한 수선 비결이었다.
뜯어낸 시계부속은 하나하나 발가락 끝에 분해한 차례대로 놓고 맞추었는데 이제는 책상 위에 늘어놓고도 뒤에 맞출 수 있을 만큼 됐다.
그가 지금까지 고친 시계는 남자용 손목시계 4개, 탁상시계 13개, 괘종시계 9개 등 모두26개나 된다. 이제는 「기타」의 제작에도 손을 대 요 몇 해 사이 19대를 만들어 1대에 1천4백여 원씩 받고 팔아 생계를 보탰다. 65년에 한삼순씨 (27)와 결혼한 그는 지금은 1남을 둔 행복한 가장이기도 하다.
『뭐든지 노력하면 눈이 안 보인다 해도 해낼 수 있읍니다.』지금의 그는 결코 고독하지않은 모양. 이미 손끝으로 광명을 찾았으니까. 【충주=김경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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