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김진의 시시각각

박근혜, 북한에 속아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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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북한은 1993년 핵개발을 선언했다. 20년 동안 북한은 세계를 속였다. 지금 미국과 한국에선 오바마와 박근혜가 김정은을 상대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는 각각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두 명씩 있다. 클린턴과 부시, 김대중과 노무현이다.

 클린턴은 미국 역사상 능력 있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르윈스키 스캔들이 있었지만 경제에서 큰 업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의 재임 중에 경제호황이 길게 이어졌고 흑자예산이 달성됐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복지개혁도 이뤄졌다. 하지만 클린턴은 북한에게는 철저히 속았다. 그는 94년 제네바 합의로 북한 핵개발을 막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북한은 세계를 감쪽같이 속였다. 플루토늄 대신 우라늄 핵개발이었다. 제네바 합의는 2003년 깨졌다.

 부시는 철저한 기독교주의자였다. 세계를 선과 악으로 구분했다. 그는 ‘악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 과감했다. 9·11 테러로 무너진 빌딩 하나에 한 개씩 부시는 정권을 부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사라졌다. 그랬던 카우보이 부시도 김정일에게는 영락없이 속았다.

 이번에는 6자회담이었다. 부시를 비롯한 서방 지도자들은 6자회담이 열리는 한 북핵이 해결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이는 아들이 책상에 앉아있으니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믿는 것과 같았다. 북한은 부시 취임 5년 만에 지하에서 핵폭탄을 터뜨렸다. 6자회담은 결국 북한에 시간과 달러만 안겨준 꼴이었다. 6자회담은 6년 만에 파탄 났고 북한은 2차 핵실험에 성공했다.

 한국 지도자들은 더 속았다. 2000년 6월 평양 정상회담에 다녀와서는 김대중 대통령은 충격적인 오판을 내놓았다.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은 사라졌다.” 2001년에 이런 말도 했다.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만약 북이 핵을 개발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DJ가 순진한 발언을 했을 때 북한은 우라늄 핵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북핵에 관한 한 노무현 대통령은 최악이었다. 속은 게 아니라 아예 눈을 감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는 외국에 나가 동포들에게 북한 핵을 용인하는 발언을 했다. “북한 핵 주장은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북한은 체제안전을 보장받으면 핵 개발을 포기할 것이며 누구를 공격하거나 테러를 위해 핵개발을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가 단정할 수 없다던 바로 그 정권이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아닌 남한에게 핵 불벼락을 협박하고 있다.

 가장이 바깥에 나가 속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이 본다. 지도자가 속으면 국민이 피해를 당한다. 선대가 속으면 후대가 어려워진다. 클린턴과 부시가 속는 바람에 오바마가 악성 말기 암을 떠안게 됐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속는 바람에 남한 국민은 핵 공갈의 인질이 되고 있다.

 3차 핵실험을 끝낸 북한이 다시 대화 위장술을 구사하고 있다.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놓고도 대화 운운한다. 이는 김정은 스타일로 세계를 시험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속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는 이미 한 차례 위장술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 2002년 그가 북한을 방문하자 김정일은 환심을 사려고 치밀하게 계획했다. 핵개발·수용소·굶주림 같은 어두운 현실은 철저히 가리고 할리우드 세트 같은 평양 시설만 보여주었다. 박근혜는 결국 북한의 속살은 보지 못하고 가짜 인상만 가지고 내려왔다.

 한국의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로 남는 데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그것은 북한에 속지 않는 것이다. 박근혜는 평양의 추억을 잊어야 한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지난 20일자 본인의 칼럼 ‘아베, 마루타의 복수를 잊었나’와 관련, 취지와 달리 일본 원폭 희생자와 유족을 포함해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유감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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