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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씨 은퇴 선언의 파문|당분간 공백 상태 난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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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종필 공화당의장의 탈당계 제출과 공직 사퇴 선언은 이상 평온으로 불리던 공화당의 판도에 또 하나의 큰 파문을 몰고 왔다. 1년 뒤쯤에나 본격화할 것으로 예측되던 71년에의 당내 후계자 경쟁은 앞당겨 불이 붙었고 어쩌면 그 윤곽도 보다 빨리 드러날 가능성이 커졌다. 김 당의장이 정계에서 은퇴하든 그대로 눌러앉게 되든 이것은 집권층의 기류에 적잖은 변화를 주는 새 계기가 될 것 같다.
김씨의 이번 정계 일선에서의 은퇴 의사 표명은 그의 측근들도 시인하듯이『전혀 뜻밖의 일이라기보다 당내 분위기가 이렇게 되게끔 되어갔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김용태 의원이 제명된 지 닷새만인 30일 김 당의장이 정례당무회의에서 공직 사퇴의 뜻을 비췄을 때 한 당무위원은『그동안 공화당 주변의 모든 상황이 이런 막다른 길을 스스로 오게 했다』고 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공화당 안의 정치 상황은 얼핏보기에 조용하고 정돈된 것 같았지만, 그 밑바닥에선 갈등의 불씨가 내연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른바 친김「라인」이 중심이 된 주류와 반 김「라인」의 비주류가 뚜렷한 선으로 그 세력을 구분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어떤 명분이나 원칙과도 관계없는 대립을 계속해 왔다. 충남도당의 사무무국 인사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 비주류·주류대립이 「모델·케이스」처럼 얘기도리 정도로-.
이런 가운데 주류계가 요직 경쟁에서 차츰 탈락됨으로써 대립의 골짜기도 더욱 깊어갔다. 지난 총선을 전후해 있었던 사무국 개편 때만해도 주류계서는 적지 않은 불만을 보였었다. 더구나 『공화당이 집권당으로서의 영향력을 차츰 잃어간다』고 주로 원내 주류측은 입버릇처럼 털어놓았다.
김 당의장은 주류·비주류의 이런 대립을 조정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두차례의 자의반 타의반 외유라는 호된 정치 홍역을 겪은 그는 모든 정치 행동에서 눈에 띄게 조심성을 보여 정치의 모든 역학 관계를 박정희 총재에게로만 집중시키도록 밀고 갔다. 일부 중도계 인사들은 『김 당의장이 제2인자로서의 「리더쉽」을 행사하는데 약했기 때문에 오늘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고있다. 아뭏든 그는 5·16혁명초 풍겼던「강자」의 「이미지」를 뜯어고치기 위해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조심성 있는 정치」를 했고 이것은 지도력의 큰 결점으로 오늘의 사태를 가져왔다고 풀이하는 측도 있다.
이런 몇가지 배경을 볼 때 앞으로 펼쳐질 일련의 정치 과정은 어떤 하나의 길로만 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당의장 사퇴서가 수리되든 반려되든 공화측 안엔 여러 갈래의 새 양상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퇴서의 수리 여부가 결정되기 이전까지, 또는 결정된 뒤라도 상당기간 당 기능의 마비 내지는 공백이 불가피할 것 같다. 왜냐하면 당무위원 전원의 일괄 사표 표명 얘기가 나오고 있고, 이 문제가 결말나서 기구가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의장의 사퇴서가 수리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경우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전망하고 있다. ①주류계 일부 탈당 또는 제명 ②사무국 등의 요직 일부 개편 ③제3당의 태동 가능성 등…. 이중에서 제3당 창당은 거의 희박하다는 것. 왜냐하면 김 당의장이 박 총재에 대한 개인적인 신의를 굳게 지키겠다는 이상 생각할 수 없으며 또 은퇴한 뒤 한두달 지나 외국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일부에선 김 당의장이 은퇴 1년 이내에 다시 정계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는 이도 더러 있다.
김씨의 사퇴서가 반려되어 다시 눌러앉게 될 경우에는, 보다 양상이 복잡해질 것이라는 몇가지 가정들이 얘기되기도 한다.
첫째 이번 사건의 직접 동기라고도 볼 수 있는 김용태 의원의 제명 문제 해결, 둘째 공화공의 당권 확립 문제, 세째 주류·비주류대립의 근본 해결 문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김씨에 의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이런 문제들이 받아들여 질 경우, 김씨의 보다 나아지는 입장과 비주류와의 관계에서 새 양상이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가정들은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이후락 비서실장을 통해 번의를 종용했지만 사태는 아직 유동적이며 현재로선 아무도 사태의 추이나 결과를 점칠 수 없는 형편이다. 다만 김 당의장의 거취 문제가 어떤 형태로 낙착되든 공화당의 집안 사정이 새 국면에 부딪치게 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것은 71년의 총선을 내다보는 우리 정치 기상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윤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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