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집배원의 날|30년을 걸어서 3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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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1일은 제1회 집배원의날. 전국 8천4백30명의 집배인의 노고를 치하하기위해 체신부가 마련한잔칫날이다. 이날 체신부는 4백명의 모범집배원을 교육회관으로초청, 표창하고 노래와 춤으로 위안했다. 또한 해방후 지금까지 순직한 37명의 유족들을위안했다.
『집배인의 날은 바로 우리집잔칫날이에요.』심상월양 (21·서울중앙우체국근무) 이 활짝 웃었다.
심양일가는 체신가족.아버지 심주한씨(62·동대문구전농1동473) 는 58년 정년퇴직하기까지 30년을 집배부로일했고 큰오빠 심상창씨 (44) 와작은오빠 심상무씨 (36) 는아버지의 대를이어 지금중앙우체국과 광화문우제국에서 집배원,언니 상자양(24) 시외전화국교환양으로일해 아버지의직업을 4남매가 이어받았다.
심노인이 집배원을 시작한것은 1928년.처음 시골우체국에서 일하다 곧서울광화문우체국으로 전근,정년최직하기까지 30년동안 집배원으로서울의 골목골목 집집을돌았다.
『배달한기쁜편지는 하루평균l0통으로쳐도 10만통쯤은 되고 3천리이상 걸었지.』심노인은 요긴한편지를 많이돌려 좋은일했다고 만족하고있다.
『사나운 개들도 내얼굴을알았을정도였지』 광화문일대 모르는 집이 없었단다.그때즘은 집배원월급으로 살림하고 남아 가끔 술도 마실수있었고 인심도 좋아 반가운 편지를 받으면 따끈한 차한잔은 으례 내놓았다고-.
큰아들 상창씨는 58년에 중앙우체국에 들어가 줄곧 충무3,4가를 맡고 있다. 요즘은 하루8백통안팎의 편지를 배달하는데 대략60리를 걷는다.
둘째 상무씨는 형님보다 1년 먼저시작했다. 군에서 제대하자 곧 아버지를 도와서 시작했는데 이젠 천직이됐다.
상자양은 5년전 숙명을나와 시험을치르고 시외전화국에 들어갔고 상월양은 작년에 5급공무원시험에 합격, 안양교도소의 보도직으로 갔다가 지난2월 오빠 언니들이 일하는 우체국으로 기어이 옮겨왔다.
심노인은 두아들의 고층을 잘알아준다. 『집배원의 일은 고달프지만 기쁨도 있지.』
상창씨는 62년봄, 6·25때 헤어진 어머니와 아들이 만나지 못하다가 형까지만 알아 편지를 보낸것을 1주일동안 충무로를 샅샅이 뒤져 편지를 전해주었을때 기뻐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평생 잊을수 없는 보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인심이 박해 고마운 편지를 전해줘도 차한잔 대접하는집은 1년에 한번정도있을지 거의 없다는것.
기쁜일이 있는 반면 직업이 슬퍼질때도 있다.
상무씨는 어느 이름있는 집에서 사나운 개를풀어놓아 물릴뻔했고 또비오는날 초인종을 눌러도 사람이나오지앉아비를맞고 10분,20분 기다리느라면 자신이 초라해지는 모습이 서글퍼질때도 있다고했다.
두형제는 하루 60리 길을 걷는일에서 한달1만4천원씩의 월급을 받는다.
부수입이란 물론없고 요즘은 고층건물이 들어서지역은 같지만 배달대상은 2,3년안에 배로늘어나 무척 고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쁜소식을 전해주면 반겨하는애인들, 특히 요즘은월남에 가있는 아들·애인에게서 오는편지를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이많아 직업의 보람을 느끼지만 아직도 세상에선 집배원을 천시하는 풍조가 가시지 않았다고 섭섭해했다.
상창씨는 문패를 집집마다 달아주고 사나운개는 매주고 「빌딩」에는1층에 우편함을 마련해주면 더빨리 소식을 전할수있다고 당부하고 다시직업을 자식에게물려줄생각은 전혀없지만 정년퇴직후의 생활보장만 있으면 정성껏 편지를돌리겠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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