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믿음과 의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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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호 04면

그리스 비극을 창극으로 만든다? 지난주 S매거진에 소개한 연출 서재형-극작 한아름 부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궁금증이 동했습니다. 국립창극단은 패륜적 악녀로만 알려진 메디아에게 어떻게 한국적 한(恨)의 정서를 부여할 것인가. 대사가 아닌 노래로만 꾸미는 송스루(song-through) 무대는 과연 이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22일 저녁 국립극장 해오름무대는 피비린내가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극은 처음부터 엄청난 밀도로 진행됐고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flashback)도 메디아의 분노를 점층적으로 전달했습니다. 극중 상황을 설명하는 도창(導唱)을 비롯한 극중 인물의 노래 가사도 귀에 잘 들어왔죠. “죄를 짓는 것은 남자, 하지만 벌을 받는 것은 여자”라는 코러스와 “신의를 저버린 남자”라는 말이 특히 여러 번 들리더군요.

이들 부부가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도 신의(信義)였죠. “결혼하고 자식 낳으면 사랑은 없어진다. 그럼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신의로 사는 게 아닐까. 하늘이 맺어준 거니까 의무보다 더 강한 신의.”

하지만 이 ‘믿음과 의리’라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사랑도 아니고 정도 아닌, 믿음과 의리로 산다는데, 이것은 또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이아손은 메디아에게 왜 믿음과 의리를 주지 않았을까요.

21일은 ‘부부의 날’이었습니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았다죠. 그 초심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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