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의 새 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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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벌타파에 의의
신민당은 20일로부터 3일간의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당헌(당헌)에 의하여 유진오 박사를 총재로 받들고 총재 중심의 단일지도체제로 새 출발을 보게 된 것은 신민당을 위해서 뿐 아니고 우리나라 정당정치 역사의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마련케 된 점에서 경하할 바 라고 할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의 성과를 말한다면 첫째 당 내의 이상야릇한 전근대적인 파벌싸움을 어느 정도로 제어하고 총재를 중심으로 당 내 세력을 규합토록 하고 동시에 정치 지도체제를 총재 중심으로 강화함으로써 정당 본래의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당 내 파벌싸움은 실로 심각했다. 주류냐, 비주류냐, 혹은 단일지도체제냐, 집단지도체제냐 하는 시비는 대회장에서까지 주먹다짐을 할 만큼 대립이 심각하여 당을 깨뜨리는냐 마느냐 하는 위기를 오랫동안 내포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대립은 정당의 보다 나은 조직과 운영을 위한다는 이론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도 상당한 시일을 두고 모였다 흩어졌다 하기에 바빴던 야당의 구차스럽던 역사를 반영하는 세력싸움에 또 정실이 오고 가는 복잡한 내막을 가졌다는 것이다. 야당 내의 이러한 파벌싸움을 가리켜 뭉치기 어려운 약체라고도 할는지 모르나, 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예로부터 내려오는 정쟁의 고질을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라고도 할 것이다.
신민당의 주류, 비주류라는 파벌의 이름은 여당의 공화당에도 있다. 거기서는 서로 내놓고 크게 말하기 어려운 주류, 비주류 하면, 신민당에서는 주먹다짐도 할 수 있을 만큼 드러내 놓고 고함칠 수 있는 활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간 이번 신민당의 전당대희는 한국 정당사의 파벌싸움의 고질을 어느 정도로 타파하고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을 크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정당으로>
의회 민주주의는 야당이 건재함으로써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은 근대의 여러나라 정치사가 증명하고 있거니와 그 국민이 내일의 보다 나은 정치를 위하여 희망과 기대를 건다면 여당에 대해서 보다도 야당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이는 정당의 여·야가 결코 적대관계를 가져야 할 것이 아니고 한 나라를 위하여 한 국회 내에서 정책의 가·부를 토론하는 가운데 국민의 찬성과 반대의 정당한 심판에 따라서 서로 웃는 얼굴로 정권을 넘겨주고, 받는 막중한 책임을 여·야가 한가지로 헌법에 적힌 대로 국민 앞에 굳게 약속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야당의 책임은 국회 내의 의석수효는 아무리 여당보다 적다하더라도 여당에 못지않은, 혹은 여당 이상의 더 큰 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 신민당은 작년의 총선거를 앞두고 야당통합이라는 조각보자기를 편법으로 얽어묶듯 하던 그 어려운 고비를 봐 그 후의 쓰라린 야당의 신고를 겪고나서 이제 전당대회에서 결정을 본 새 당헌에 의한 완전한 법적 조직과 운영체제를 마련케 된 오늘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 쉽게 한입으로 말한다면 국민의 정치가 되게 하여야 할 정당이며, 또 언젠가는 다음 정권이 약속되고 있는 정당으로서 그 조직은 진실로 국민의 정당으로서 국민적 조직기반을 가지도록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조직에는 지도 혹은 지도층의 인물이 있어야 할 것은 당연히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러나 국민 속에 있지 아니하고 국민 위에 올라서려는 따위의 지배와 권위를 앞세우려는 「두령」 족속은 결코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돈과 세력에 의한 음모에 다름없는 권모술수를 일삼는 일을 「정치」라고 이름붙일 수는 없고 그런 종류의 정객은 협잡과 부패의 선도자가 되기 쉬울 것을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정치가라면 나라와 국민의 내일을 내다보는 정책에 대한 경륜과 비판정신을 뚜렷이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할 것이다.

<지혜와 총명 발휘>
이런 점에서 새 출발을 보게 된 신민당을 이끌어나갈 총재 유진오 박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은 어느 때 보다도 크다고 할 것이다. 사실 유진오 박사는 작년 봄 대통령 후보를 신한당의 당수 윤보선 전대통령에게 넘기고 새로 통합된 신민당 당수의 책임을 맡은 이래, 복잡한 당 내 파벌을 조정해가며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는데도 수고가 컸거니와, 이번 전당대회에 이르기까지 소위 지도체제 싸움 속에서 당에 큰 금이 가지 않도록 힘써 온 수고가 또한 크다 할 것이다.
이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지혜로운 경륜뿐에의 것이 아니고 당 내의 누구의 말도 다 들으면서도 또 누구의 말에도 좀처럼 기울어지기 어려운 그의 초연한 견식과 냉철한 자세에 의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자연과학자와도 같은 분석과 종합판단에 예리한 면을 가진 법학도이면서 결코 세태에 어둡지 않은 살림의 방식과 소위 행마(행마)의 짐작도 또한 보통이 아닌 것이다.
생각컨대 직업정치가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고파는 흥정에도 우선 물건을 보고 또 시세를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점장이나 관상장이를 아침저녁으로 불러들여 가지고 세월 돌아가는 품이나 그 날의 신수풀이를 할 때는 아닌 것이다.
오늘의 정치가는 첫째 학문의 깊은 소양을 가지고 지난날의 역사와 아울러 오늘의 국제적 움직임을 내다보며 그 바탕을 신중히 따지되 전진하여야 할 방도를 고루 살필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위치와 방향은 국제적인 규모와 조류 속에서 찾아야 할 때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치방식도 학문적인 토대 위에서 따지지 않고 주먹구구로는 도저히 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모름지기 정치가라는 정치가는 학문적 소양을 쌓기위한 거짓없는 공부에 정력을 바치지 않고는 행세키 어려운 때인 것이다. 우리나라 정당운동이 오늘까지의 묵은 때를 벗는 길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앞으로 신민당의 갈 길도 또 유진오 총재의 면목도 또한 이런 곳에 있지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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