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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총리, 일본 역사인식에 일침 "한국엔 일 과거의 전쟁 챕터 안 끝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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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리셴롱 싱가포르 총리는 “일본은 아시아의 공영을 위해 주변국의 감정을 더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닛케이]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일본경제연구센터가 주최하는 제19회 ‘아시아의 미래’ 국제포럼이 23일 도쿄 데이코쿠 호텔에서 이틀 일정으로 열렸다.

 중앙일보·스트레이츠 타임스(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9개 유력 언론사가 미디어 파트너로 참여한 이번 포럼에서 각국 지도자들과 경제인들은 ‘아시아 신시대 공생의 방책을 찾는다’란 주제로 강연과 토론을 벌였다.

 23일 행사에는 리셴롱 싱가포르 총리와 알베르트 델 로사리오 필리핀 외무장관 등 16명이 참석했다.

 첫날 강연의 백미는 리셴롱 싱가포르 총리의 ‘역사인식 훈계’였다. 그는 “아베 정권이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한 걸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며 위안부 문제와 침략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이 속출하고 있는 일본의 최근 분위기를 우회적이지만 따끔하게 지적했다.

 “내셔널리즘이나 헌법개정 모두 개별 국가(일본)의 특권이며 정부의 책임이다. 그런데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나치를 완전 부정하고 모든 어린이들로 하여금 ‘당시는 나쁜 시대였다. 나치는 나쁜 인물이었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그래서 독일과 프랑스의 교과서에는 (전쟁 책임에 대해) 같은 스토리가 기술돼 있다. 한편 일본은 위안부 문제, 침략 문제를 다시 파헤쳐(아베 총리의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발언한 것)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일본이) 그렇게 할 특권은 있다. 하지만 그게 유익한 건지, 새로운 관계설정을 추진해야 할 시점에 과연 뭐가 가장 중요한 것인가…. 전적으로 일본 정부가 잘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다.”

 리 총리는 자신의 체험담도 소개했다. “1960년대 다니던 학교 옆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 학살된 민간 피해자 묘가 발견됐다. 싱가포르 국민들도 전쟁을 경험한 제1세대, 경험을 직접 들은 제2세대는 (전쟁의 피해와 고통을) 잊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싱가포르에) 사죄하고 돈도 내놓고, 그 묘지에 기념비도 세웠다. 그래서 두 나라 사이에는 그런 챕터(chapter; 전쟁이라고 하는 장)는 끝났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다르다. 전쟁이 과거의 챕터가 아닌 게 현실이다.”

 리 총리의 작정한 듯한 훈계에 일본 측 사회자도 “솔직한 발언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조강연에 나선 기시다 후미오 일 외상은 “한국 등 이웃나라와 곤란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국적 관점에서 일·한 관계를 관리(manage)해 정치 분야를 포함한 대화와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는 원칙론을 반복했다.

이에 앞서 기타 쓰네오 니혼게이자이신문 사장은 인사말에서 “일본 주요 상장기업의 영업이익 지역별 비율을 보면 아시아가 70%를 넘어선다”며 “새 주역이 계속 등장하는 아시아는 이제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에는 중앙일보 이철호 논설위원이 참석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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