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일본의 전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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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아이다 마코토, 전쟁화 리턴즈: 뉴욕 공습도, 1996, 169×378㎝, 6짝 패널에 혼합 매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은 일본의 국립미술관 1호다. 이곳 3층의 한 방에서는 항상 ‘지독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쟁화(戰爭畵) 상설전이다. 전시장 앞 엔 이렇게 적혀 있다. “1938년 국가총동원령법의 시행으로 모든 일본 국민은 전쟁에 복무했다…물자는 부족하고 화구·재료도 배급제였다. 전쟁기록화를 위한 화구만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화가들은 특정 행사의 기록뿐 아니라 역사화 같은 기념비적 양식으로도 그렸다. 51년 미국으로 갔던 전쟁화는 70년 ‘영구대여’ 형식으로 반환됐다. 이 153점은 6년간의 보존수복 끝에 소장품전에 나왔다. 모든 작품에 대해 공공전시를 위한 저작권 허락을 받았다. 일본 근대미술사에서 전쟁 중에도 전후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한 전쟁화를 앞으로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할 것이다.”

 ‘미술사적 관점’을 견지하려 애쓴 미술관의 이 건조한 문구에 따르면 전국민이 전쟁에 참여했으며, 일부 예술가는 재료 조달을 위해 ‘적극적으로’ 그렸다. 특히 ‘저작권 동의’를 거론한 대목에선 그린 이, 소장처, 보는 이, 누구에게도 달갑지 않았을 전시의 분위기가 짐작된다. 5점 정도에 불과하지만 작전회의 중인 군인들, 자살폭격에 나선 전투기 따위를 기념비적 사이즈로 그린 전시작들은 ‘광기의 시대’를 증언하는 동시에 예술이 정치에 어떻게 아부했는지 또한 드러낸다. 지난달 갔을 때 이 외딴 방엔 고령의 관객 두어 명만 있었다.

 ‘애물단지 그림들’에서 성찰의 단초를 얻는 전후 세대들이 더러 있다는 게 그나마 이 상설전의 부대효과일 것이다. 일본 현대미술의 ‘아이돌’ 아이다 마코토(48)의 ‘전쟁화 리턴즈’ 시리즈가 그렇다. 도쿄예대 대학원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가장 가난했던 시절 그린 12점의 연작이다. 그중 ‘뉴욕공습도’는 살던 집의 헌 문짝 6개를 병풍 삼아 전통 일본화 방식으로 뉴욕 시가지를 그리고, 그 위에 일본의 전투기 편대를 무한대 부호 모양으로 띄운 그림이다. 작가는 “여기 그린 제로센은 미국까지 날아가 공습할 능력이 전혀 없는 그런 전투기”라고 부연하며 “지금 이 시대를 직접 모티프로 삼는 게 아니라, 지금을 만든 가장 가까운, 가장 커다란 원인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본 우익들의 망언이 질기게 이어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과거가 저렇게 버젓이 당신들의 국립미술관에 전시 중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미술관은 마침 그들이 ‘교코(皇居)’라고 부르는, 일왕의 거처 바로 옆에 있다. 1945년 패전·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일왕이 직접 근대의 마침표를 찍었던 그곳이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