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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없이 1700억 자진납세… 국세청 봐주기 없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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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상률

검찰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008년과 2009년 사이 상속·증여세 1700억원을 자진 납부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사실은 당시 이 회장의 재산을 차명으로 관리한 이모(44)씨가 “관리한 이 회장 재산이 수천억원이고 관련 세금이 1700억원에 달한다”고 법정 진술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시민단체는 “세금이 1700억원이면 차명으로 숨겨놓은 재산은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어떤 이유로 막대한 세금을 스스로 냈고, 또 세금을 1년에 걸쳐 분납한 근거는 무엇인지 정밀조사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의 봐주기는 없었는지도 조사한다. 이에 국세청 관계자는 “세금 납부 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세금 분납은 납세자가 결정할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많은 세금을 한꺼번에 낼 돈이 없으면 누구나 분납해도 되고, 세금 체납에 따른 가산세를 물면 된다. 이 관계자는 “세금을 나눠서 내더라도 가산세를 내지 않으면 국세청 전산망에서 세금 납부 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이 회장 측이 세금 원금과 함께 가산세를 납부했음을 시사했다.

 또 하나의 논란은 막대한 재산을 차명으로 관리하고 탈루한 세금이 1700억원이나 되는데도 국세청이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점이다. 이에 대해서도 국세청은 “상속·증여세와 관련해서는 탈루액수가 많아도 검찰에 고발한 전례가 없다”는 입장이다. 차명계좌는 금융실명제법상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조세포탈을 위한 차명 재산 관리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실제로 지금까지 다른 대기업 일가도 막대한 규모의 상속·증여세를 냈지만 국세청이 고발한 적은 없다. 또 당시에 검찰이나 경찰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국세청이 고발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이와 관련해 한상률(60) 전 국세청장도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검찰이 CJ를 수사 중이었기 때문에 국세청이 따로 조사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한 전 청장은 CJ그룹이 1700억원의 세금을 납부한 2008년 당시 국세청장이었다. 그는 이어 “내가 청장으로 재임하는 동안(2007년 12월~2009년 1월) CJ그룹을 세무 조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1700억원은 추징이 아니라 자진납부였을 것으로 기억된다”고 덧붙였다.

 -세금탈루를 했으면 조사했어야 하지 않나.

 “당시 검찰이 CJ를 수사하지 않았나. 원래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을 국세청이 따로 조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국세청이 형사고발할 이유가 없었다. 검찰 수사 결과 조세 포탈 혐의가 있으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입건하고 국세청에 통보해 세금을 추징하면 되는 것이었다.”

 -검찰에서는 국세청이 CJ의 차명계좌 자산에 대해 세금만 받고 형사고발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겠다고 하는데.

 “차명계좌는 지금까지 고발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차명계좌를 옛날부터 보유하고 있는 경우 조세포탈 목적인지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법상 차명계좌는 관례로 인정해주는 측면도 있다.”

김창규·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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