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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부안 소 간첩" 그 진상|「파리」의 붉은 안개|진상은 영원한 흑막 속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프랑스」의 군사정보수집에 특히 관심을 품고있는 미국의 한 고위정보장교가 나에게 두개의 서류를 넘겨주었다. 그 서류 속에는 소련의 국방설비내부의 모종의 고도로 복잡한 행정조직 원리가 비장 되어있었다.
이 미국장교로부터 이 서류를 극히 조심해서 다루도록 부탁 받은 나는「자퀴르」장군에게 서류를 발송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통상외교 「파우치」(우변보따리)편으로 내보고는 한푼의 가치도 없는, 말하자면 소련신문을 발췌한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요지의 통신문이 「파리」로부터 「프랑스」영사관에 와있었다.
한번은 나의 미국인친구가 앞서준 정보에 대해 「파리」에서 어떤 반응이 왔느냐고 물었다.
사실대로 말했더니 그 친구는 불같이 역정을 냈다. 그 문서야말로 유명한 「펜코프스키」 대령이 서방세계에 보내는 정보의 마지막 부분이라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펜코프슨키」소련 대령은 미국을 위해 간첩을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총살되었다.
내 친구는 말을 이었다. 『그 정보는 일급정보야. KGB는 그가 우리에게 이런 정보가 넘겨진 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련국방당국은 군사계획을 대폭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신세가 따분해졌다. 내가 속했던 「프랑스」의 정보기관으로부터는 물론이고 미국인들한테서도 고립되었다.
일루의 희망이라도 내게 있었다면 그것이나마 「스웨덴」의 「벤너스트램」대령이 소련간첩이라는 이유로 6월에 체포된 놀라운 사건으로 산산이 깨어졌다. 주미 「스웨덴」공군무관으로 「워싱턴」에 오랫동안 근무한 「벤너스트램」대령은 NATO방위계획에 관해 아주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오락을 즐기는 활량으로 정평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당시 「워싱턴」에 주재하고 있던 몇몇 「프랑스」장교들과 뻔질나게 교제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직책상 재빨리 「벤너스트램」대령과 「프랑스」장교들과의 관계를 내사하기 시작하였으나 「파리」본부에서 내려오는 명령이라는게 나의 조사를 중지하라는 단호한 명령뿐이었다.
12년 반 동안 NATO를 위해 협력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퀴르」장군이 친히 써보낸 승진축하인사와 함께.
그러나 나는 승진이 나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음흉한 의도에서 이뤄졌음을 한눈에 간파했다. 그래서 절대로 입을 봉하고 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수년동안 주미「프랑스」대사 「에르브·알팡」씨와 나와의 관계는 매우 원만했다. 「알팡」대사가 휴가차 귀국하는 것을 알고 나는 노련한 외교관인 그에게 나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때까지도 「알팡」대사는 「마르텔」의 존재에 깜깜무소식이었다.
나는 그에게 만일 SDECE가 반미정보활동을 계속한다면 미·불관계는 파탄에 직면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알팡」대사는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8월 「조르지·파케」가「파리」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NATO의 고급장교로서 분명히NATO내의 KGB간첩의 하나였으나 KGB간첩은 그만이 아니었다.
9윌16일 나의 책상 위에는 전보 한 장이 와있었다. 10윌18일자로 미국에서의 나의 임무는 끝난다는 요지였다.
이제 6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으나 나에게는 그 6년의 시일은 괴로운 시절이었다.
미·불우호관계가 악화돼왔음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마르텔」의 증언은 광분의 관심을 아직도 끌지 못하고 있다. 내가 「프랑스」정보기관을 그만두기 한달 전에 「파케」라는 관련자 한사람이 체포되었으나 그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산더미 같은 흑막은 영원히 장막에 가려져 버리고 말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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