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문제의 정치적 차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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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육문제를 에워싼 논쟁은 흔히 무책임한 백가쟁명으로 끝나는 수가 많은 듯 하다.
교육은 모든 사람의 관심사요, 또 그런 한에 있어 그것은 누구나가 다 일가견을 가진 전문가로 자처하기 쉬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처럼 교육이 마치 유일한 사회상승의 통로로 착각되고있는 나라에서는 적지 않은 사회문제를 수반하는 것이 통례인 듯하다.
교육문제에 관한 논의가 항상 소위「치맛바람」과 일본의 이른바「교육마마」들의 극성과 결부돼서 사회문제의 으뜸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실례일 것이다.

<대한교련 건의의배경>
「6백만 어린이를 입시지옥에서 구출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그동안 중학입시의 근본적 개혁을 모색해오던 대한교련이 지난 26일 이른바 중학교 구제의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일련의 개선방안을 작성하여 요로에 건의서를 낸 취지는 충분히 알만하다.
「과외공부의 폐단」이나「병적인학교차」의 원인이 모두 중학입시에 있다고 판단하는 한에 있어서는 이 모든 폐단을 일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중학입시를 폐지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중학까지의 의무교육이 실현되기까지에는 불가불학교구제건, 학교군제건, 추첨제건, 또는 국민교의 내신서위주건 어쨌든 중학입학의 무시험 전형제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됨직도 하다.
뿐만 아니라 대한교련의 건의는 광범위한 사회단체의 여론적 뒷받침을 받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 건의가 나오기까지에는 대한교련이 주최한 공청회등을 통해서 각계인사의 의견이 청취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 어머니회, 새싹회, 서울국민학교 교장회의, 중등교련, 사회정화대책협의회등 여러단체들에 의한 과외공부추방「캠페인」이 그 배경을 이루고있음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시기·방식적정잃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한교련당국이 이처럼 엄청난 함축을 가진 교육제도의 근간에 관련되는 문체를 이 시기에 그런 방법으로 불쑥 건의형식으로 발표하고, 문교당국자로 하여금 직석에서『실현성이 희박한 건의』라고 일축을 당하게 한데 대해서 못내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물론, 전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있는 이러한 중학입시제도의 개선문제에 대해서 문교당국이 단순히 행정적·기술적인 애로만을 이유로 대한교련처럼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교직단체연합회가 행한 건설적인 건의를 즉석에서 무시하려는 듯 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수백만 어린이들과 그 학부형들의 날카로운 관심의 촛점이 쏠려있는 이와 같은 문제를 기정방침에의한 내년도 입시를 불과 7개월 남겨둔 지금, 불쑥 발표함으로써 주무당국인 문교부의 반발과 일반의 혼란을 가져온 일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문젯거리임을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문제에 관한한 아무리 건설적인 제안이라 할지라도 그 발표의 시기와 방법을 잘못 택했을 경우 그것은 결국 중구 난방격인 혼란을 가져오는 것밖에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행정차원넘은 문제>
솔직이 말하여 우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입시제도의 개선문제가 이제는 단순한 문교행정상의 문체가 아니라, 높은 정치적 차원에 선 달관과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히 문교당국의 행정력이 약하다거나, 오늘날 모든 교육계획은 정부내 각 부처의 협력을 얻지 않고서는 세울수 없다거나 하는 기술적인 관점에서만 하는 말이 아니다.
중학입시제도의 존속이나, 학교차의 폐단이 제아무리 우심한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전통있는 모든 나라에는 반드시 그 나라 교육계의 성가를 홀로 짊어지다 시피하고 있는 이른바 유명학교, 즉 오랜 전통을 자랑으로 하는 학교가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이들 각 학교의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오늘날과 같은 대중사회 속에서는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이른바 입신출세나 치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학자또는 그밖에도 한 사회에서 주춧돌적 존재로서 별로 세속적인 보장은 받지 못하나마 이들이 없이는 한 나라의문화의 진운을 기대할 수 없다는데 그 존재가치가 있다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유년시절부터 흔히「책벌레」의 별명을 받을 만큼 오직 파고드는 공부에 열중하고 치열한 입시경쟁을 이겨냄으로써 스스로 그러한 사회의 주춧돌적 존재가 되고있음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우기 영재교육의 필요성이 고조되고있는 오늘의 시대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의 학교차 없애기 운동이 이러한 전통있는 학교의 격하까지를 정당화시켜도 좋을것인지 그야말로 긴 안목에선 반성과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유일한 정의원천>
다음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각급학교의 입시제도야 말로 아직도 사회적 부패에 오염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제도임을 깨달아야 한다.
소위 일류학교 때문에 입시지옥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도 뒤집어 보면, 이분야 만큼은 절대로 부정·부패의 개재여지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입시지옥만을 없애기위해 국민의 심정가운데 남겨진 거의 유일한 이정의의 실존의식의 원천까지를 가벼이 무너뜨려도 좋을 것인지 한번 심사숙고해볼 일일 것이다.
학교구제를 얼른 실시키 곤란하다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행정적·기술적인 문제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로 인한 이와 같은 부정·부패의 만연현상을 우리는 더 걱정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학입시의 개선의 문제는 이제 단순히 교육자나 문교행정당국의 좁은 식견만을 가지고 피상적으로 왈가왈부를 되풀이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대한교련당국이 작성한 건의서의 취지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면서도 이제 이 문제가 피상적인 일장일단론만을 가지고 이 시기에 그런 형식으로 불쑥 제안된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대통령직속하의 장기교육심의회가 조속히 구성되어, 이문제를 좀더 높은 정치적차원에서 신중히 검토해 주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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