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최태원 SK 회장 최고 인기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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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들도 경영 감각을 갖추면 얼마든지 수십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CEO가 될 수 있다.”(변대규 휴맥스 사장)

“이론보다 오랜 현장 경험을 토대로 강의를 하니 매우 흥미롭다.”(서울대 학생)

스타급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대학 강단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스타 CEO들 강의시간에는 살아 있는 학문을 듣기 위해 정원의 2∼3배를 웃도는 학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올해 들어 CEO들이 대학의 명예교수 및 겸임교수직을 맡고 있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CEO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데다 학생이라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기업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아울러 소비자의 취향과 선호도를 직접 파악할 수 있어 여러 모로 CEO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CEO 교수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또 대학으로서도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CEO의 ‘살아 있는 수업’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에게도 이들의 강의가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심지어 몇몇 유명 CEO의 강의시간에는 서서 청강해야 할 정도다.

최태원 SK(주) 회장은 현재 서울대와 성균관대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최회장은 올해 1학기부터 서울대 지구환경 시스템공학부에서 ‘산업기술정책론’ 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있다. 지난 3월 6일,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에서 ‘국가 경쟁력과 기업평가 시스템’을 주제로 첫 강의를 시작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서 ‘기술혁신과 경영’을 주제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윤 부회장은 강의를 통해 “서울대 졸업생도 미국 유학을 가면 영어실력이 부족해 기숙사에서 책만 읽다 돌아온다”며 “더 많은 학생들이 조기유학을 가서 영어도 배우고 현지 인맥도 쌓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태원 회장은 ‘산업기술 정책’ 강의

그는 또 “공대 출신까지 고시 준비를 하는 세태가 안타깝다”며 “사회 각 분야에 인재들이 고르게 진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벤처기업 스타 CEO인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서울대 전기공학부에서 ‘전자산업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변사장은 학기 전반부에는 일반 경영 관리에 대해서 강의했다. 후반부에는 벤처기업 경영에 대한 ‘생생한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변사장은 특히 강의시간에 “공대생들도 경영 감각을 갖추면 얼마든지 수십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CEO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수강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강의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부회장과 변사장의 강의실에는 각각 1백50여명의 학생들이 몰려 강의 내내 서서 들어야 할 정도라고 한다.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은 “딱딱하게 이론만 전달하는 수업과 달리 이론과 사례를 적절히 접목시켜 강의가 지루한 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이들 CEO의 강의는 대부분 ‘특강’ 형태를 띠었다. 단발성 강의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전임강사 등 겸임교수직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업계 CEO들의 강의는 더욱 현장감을 살릴 수 있어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학에서 후배 양성에 나선 이들은 CEO뿐만이 아니다. 기업의 임원급 인사들과 연구직 임원들도 인기 강사 반열에 올라 있다.

오주섭 해태음료 마케팅담당 이사는 베테랑 강사로 알려져 있다, 숙명여대에서 5년째 강의를 하고 있는 오이사는 현재 언론정보학부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과목을 맡고 있다.

이 과목의 수강 정원은 40명. 한때 1백80명이 수강 신청을 해 학교측이 강의실 배정 문제로 고심하기도 했다, 오이사는 “딱딱한 이론보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하다 보니 학생들이 매우 흥미로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CEO들은 촌음을 아껴 써야 할 지경이다. 강창희 굿모닝투자신탁운용 사장은 월요일마다 2시간씩 성균관대 경영학과에서 ‘증권시장론’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강사장은 벌써 2년째 겸임교수직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금융기관 경영론’을 강의, 학생들에게 호평을 받아 올해 연이어 강의를 맡고 있는 것이다. 일본통으로 알려진 강사장은 대우증권 상무와 현대투신운용 사장 등 화려한 경력을 갖추고 있어 강의 또한 실무와 별반 차이가 없다.

심지어 학생들은 회사 사장실로 찾아올 정도로 사제간 관계도 돈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강사장은 증권 및 투신 경영전략과 관련된 책도 두 권이나 펴냈다. 최근 펴낸 ‘직접 금융시대의 증권·투신 경영전략’은 국내외에서 그가 경험한 선진 증권업계 현황 등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유진국 삼양데이타시스템즈 사장은 현재 홍익대 국제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1학기에는 ‘경영전략과 벤처기업론’ 과목을 맡아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유사장은 92년부터 서울대, 성신여대 등에서 강의한 경험이 있다. 유사장은 “최신 이론과 실무를 적절하게 병합해 강의하기 때문에 주말에도 강의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말한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도 경희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의 겸임교수를 맡아 대학 강단에 섰다. 현재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 ‘특강’을 하고 있는데, 지난 3월에는 ‘한국경제 현황’에 대해 강의했다.

백갑종 SDN TV 부회장은 쌍방울 사장을 역임하면서 쌓은 경영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백 부회장은 현재 한양대 경영학부에서 ‘경영학 실습’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백 부회장은 “수강하는 학생 수가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사장도 한양대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특히 노사장은 CEO와 겸임교수뿐만 아니라 고려대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외국인 CEO도 대학 강의 합류

투신권 CEO들이 대학 강단에서 맹활약하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이강원 LG투신 사장은 ‘증권분석론’ 과목으로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미국 경제학 박사 출신인 이사장은 “미국 신시네티대 경제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친 경험이 있어 겸임교수를 맡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며 “수업을 하다 보면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외국인 CEO도 겸임교수 대열에 합류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오이겐 뢰플러 하나알리안츠 사장은 성균관대 경영대학원에서 ‘포트폴리오 관리론’을 강의하고 있다.

오이겐 뢰플러 사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경영학 박사 학위 출신. 학교측 관계자는 “매주 금요일에 영어로만 강의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다소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강의 내용이 알차다보니 학생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고 말했다.

투신권 CEO 겸임교수 중 리퍼코리아 이인섭 사장을 제외한 이강원 LG투신 사장, 강창희 굿모닝투신운용 사장, 오이겐 뢰플러 하나알리안츠 사장 등 3명은 모두 성균관대에서 열강하고 있다. 그만큼 성균관대에선 투신권 CEO를 명예교수로 모시는데 열성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4월 16일 산업자원부 후원 아래 한국산업기술재단과 함께 ‘기업 CEO 공학교육지원단’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전경련은 오는 2학기부터 CEO 1백명을 전국 주요 대학의 공대 겸임교수로 위촉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방침이 본격 시행되면 CEO의 대학 강의는 부쩍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올 가을학기부터는 ‘CEO 교수 전성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출처: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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