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공관, 본국 손님보다 재외국민 맞춤형 서비스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재외 공관장들과 가진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과 해외 동포가 함께 누리는 국민행복시대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오른쪽부터 윤병세·정은영 외교부 장관 부부, 박 대통령, 권영세·유지혜 주중 대사 부부. [최승식 기자]

역대로 해외에 있는 우리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큰 일 중 하나는 본국에서 오는 ‘손님맞이’다. 해외 동포의 민원을 듣고 해결하기보다는 한국에서 오는 ‘실력자’들에 대한 의전(儀典)에 신경을 쓴다는 얘기가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이 점을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지난 20일부터 닷새간의 일정으로 124명의 공관장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리고 있는 새 정부의 첫 재외공관장 회의에서다.

 박 대통령은 “지금 720만 재외동포와 15만 명의 유학생, 1300만의 해외여행 국민이 매일매일 외국에서 많은 일과 직면하고 있다”며 “그동안 (재외공관에 대한) 큰 비판 중 하나가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 대접에만 치중하고 재외국민들이나 동포들의 애로사항을 도와주는 일에는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외공관에서 (동포의 애로사항을) 도와주지 않으면 재외공관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재외공관에서는 본국의 손님 맞는 일보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앞으로 이런 비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한 뒤 “재외공관의 업무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이 재외국민 보호와 현장 맞춤형 영사서비스”라고 강조했다. 그러곤 “동포·유학생·관광객 등의 안전에 한 치 소홀함이 없도록 힘써 주고, 동포사회의 다양한 민원들도 투철한 서비스 마인드로 최선을 다해 처리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방미 기간 했던 동포 간담회를 거론하면서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과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 확충, 재외국민들의 한글·역사교육 지원 등과 관련해서도 유관 부서와 협업해 실천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구체적인 과제도 안겼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뉴욕 동포간담회에서 ▶복수국적 허용 대상 확대 ▶재외국민 주민등록증 발급 등을 언급하며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챙겨나가겠다”고 약속했었다.

 박근혜정부가 추구하는 재외동포 정책의 큰 그림은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 활성화를 통한 한국의 경제영토 확대다. 세계 곳곳의 720만 명 재외동포를 네트워크로 엮어 투자를 유치하고 글로벌 인재를 얻어 경제부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재외공관의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인 듯하다.

 매년 한 차례 열리는 재외공관장회의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다. 그런 만큼 새 대통령의 임기 첫해에 열리는 재외공관장회의는 앞으로 5년간의 현장 외교를 가늠할 수 있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 때는 첫 재외공관장회의를 ‘세일즈 코리아’ 컨셉트로 치렀다. 당시 회의에는 외교관뿐만 아니라 기업인들이 참석해 외교관들과 일대일 상담을 하는 일정까지 포함됐다.

 박근혜정부의 첫 회의에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등에 대해 설명이 집중됐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확고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양국 간 신뢰를 하나하나 쌓아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구축하려는 것”이라며 “신뢰는 서로가 룰과 약속을 지킬 때만 구축될 수 있는 것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룰과 약속을 어길 경우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국에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알려주면 좋겠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해 세계 각국의 지지를 얻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또 “공직자의 잘못된 행동 하나가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치고 국정운영에 큰 해를 끼친다는 것을 늘 마음에 새기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달라”며 “앞으로 공직자들은 철저한 윤리의식으로 무장하고 근무기강을 바로 세워서 국민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최근 불거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됐다.

글=허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