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은사' 임흥세의 아프리카 열정 "축구는 기적, 공 하나로 수천명 삶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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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임흥세씨가 자신이 선물한 축구공을 든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만약 당신이 아프리카의 오지에 머물다 말라리아와 장티푸스에 감염됐다면, 요로결석까지 생겨 고통이 더해졌다면, 아픔을 참고 운전하던 중 차량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치료차 들른 병원에서 “위장에 암세포가 퍼졌다.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선고까지 들었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드라마 같은 불운한 이 상황을 실제로 겪은 이가 있다. ‘축구로 검은 대륙의 에이즈를 퇴치하겠다’는 꿈을 품고 아프리카 최빈국 남수단에서 축구 교육 활동을 하는 임흥세(57) 풋볼액트29 감독이 주인공이다.

 ‘홍명보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그는 지난해 말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故) 이태석 신부가 활동하던 남수단 시골마을 톤즈로 건너갔다. 만연한 에이즈, 대물림하는 가난 등 암울한 현실에 노출된 현지 청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면역력과 희망을 함께 심어줬다. 하지만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지난 3월 귀국했고, 위암 수술 뒤 요양 중이다. 요즘 같은 초여름 날씨에도 오리털 파카를 입어야 할 만큼 쇠약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긍정적이었다. 지난 20일 경기도 일산에서 만난 임 감독은 “수술한 의사가 ‘조금만 늦었다면 생명이 위험했을 것’이라 했다. 얼마나 다행이냐”며 활짝 웃었다.

 톤즈는 가난한 아프리카 마을들 중에서도 열악하다. 물과 음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전기도 없다. 임 감독은 현지에서 매일 두 시간씩 발전기를 돌려 전기와 인터넷을 사용했다. 임 감독이 열악한 땅을 스스로 찾아간 건 “축구가 주는 기적을 믿기 때문”이라 했다. 앞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20여 개국에서 현지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축구로 아이들의 건강이 좋아지고 성격이 긍정적으로 바뀐 사례를 숱하게 확인했다. 그는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수백, 수천 명 인생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 냐”며 미소지었다.

 임 감독은 7월 초 재검진 때 의사가 ‘괜찮다’고 판정하면 바로 남수단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빨리 돌아오라”며 손을 흔들던 남수단 어린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어서다. 귀국 직전 남수단 체육부장관으로부터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의도 받았다. 수락 여부를 고민 중이다.

 임 감독은 “주변 사람들이 ‘그만큼 했으면 됐다’는 말을 하지만,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축구를 통해 삶의 희망을 찾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이 일을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남수단에서 몇년 간 봉사한 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면 인근의 또 다른 빈국으로 이동해 새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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