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잔인한 4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제1차 세계대전은 전쟁의 개념을 바꾸었다. 1914년 이전까지 전쟁은 영웅의 무용담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프랑스.독일 젊은이들은 영웅을 꿈꾸며 자원입대했다. 그런데 금장 단추와 깃털 모자를 쓴 기마병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군악대의 북소리에 맞춰 근엄하게 진군하던 군인은 곧바로 대량 살륙당했다.

전쟁의 양상은 기관총의 등장으로 바뀌었다. 기관총 앞으로의 돌격은 곧 죽음이다. 전쟁은 공격보다 수비 위주 지구전이 됐다. 참호와 철조망이 방패를 대신했다. 전쟁 초기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마주친 파리 북쪽 마른(Marne)강 전투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려 4년여간 계속됐다. 수백km에 걸쳐 참호가 구축됐다. 장교들이 어린 병사들을 위협해 참호에서 내몰아 적 기관총에 쓰러지게 만드는 소모전이 반복됐다. 진흙투성이 구릉을 사이에 두고 수백만 명이 죽어갔다. 전사(戰史)에서 전쟁의 무모함과 잔혹함을 극명히 보여준 '부끄러운 전투'의 대명사로 남았다.

두 병사가 이 전선에서 살아남아 세계사에 이름을 남겼다. 히틀러와 레마르크다. 히틀러는 1차대전의 광기를 확대 재생산했고, 레마르크는 참전 경험을 소재로 한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로 반전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전쟁의 폐허와 충격 속에서 유럽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종횡무진하던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의 자부심이 20세기 벽두에 좌초했다.

T S 엘리엇의 '황무지(荒蕪地)'는 이런 암울한 시대를 반영한다. 22년 발표된 장편 서사시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로 시작된다. 생명이 약동하는 4월이 가장 잔인한 것은 죽음과 같은 삶을 강요당하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역설이 많은 공감을 얻게 된 계기는 아마도 4.19일 것이다. 수많은 젊음이 무고한 피를 뿌려야 했다는 점에서 1960년의 4월은 정말 잔인했다.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 왜 고독해야하는 것인가를"(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중) 고민하던 시절 얘기다. 그로부터 두 세대를 건넌 2005년 4월은 더이상 잔인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빛나는 꿈의 계절이어야 맞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