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상생+R&D … 구본무 회장 1조2000억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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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초 구본무(68) LG 회장은 계열사 경영진과 이듬해 사업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뜻밖의 주문을 했다. ▶채용 축소나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말 것 ▶투자를 줄이지 말 것 ▶사회공헌활동 비용을 줄이지 말 것 등 3대 사안이었다. 당시는 미국발 글로벌 경기 침체로 모든 기업이 잔뜩 움츠러들어 있을 때였다. 의아해하는 임원들에게 구 회장은 “침체기일수록 투자하고 인재를 키우고 상생해야 한다. 어렵다고 눈앞에만 몰두하면 2∼3년 뒤 미래가 없는 기업으로 전락하게 될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올해도 구 회장은 10대 그룹 중 제일 먼저 20조원에 달하는 연간 투자 계획을 밝혔다. 역대 LG 그룹 투자액 중 최대 규모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안팎의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침체기에도 투자는 계속돼야 한다’는 자신의 경영 소신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침체기일수록 투자·상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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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20일 또 다른 ‘상생’과 ‘투자’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날 LG그룹이 발표한 ‘중소기업과의 동반 성장 및 미래 융·복합 기술 투자 확대 계획’이다. 우선 LG는 시스템통합(SI)·광고·건설의 3개 분야에서 계열사 간 거래 물량을 중소기업에 개방하기로 했다. 연간 4000억원 규모다.

 예컨대 SI회사인 LG CNS는 올해 계열사에서 수주할 사업 중 매출의 20~30% 수준인 2300억원어치를 중소기업에 맡길 계획이다. 시스템 통합 부문은 기업 내부 정보 관리 등에 연계돼 있는 특성 탓에 다른 기업들도 가장 주저하는 분야지만 LG는 민감한 핵심 부문을 제외하고 과감히 개방을 택했다.

 광고(HS애드)와 건설(서브원)도 각각 1000억원, 700억원 규모를 중소기업에 개방한다. 광고의 경우 1회성 전시나 이벤트는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고 신제품이나 전략제품처럼 제작 과정에서 상품 기밀 유지가 필요한 광고 외에는 경쟁입찰을 확대하기로 했다.

 건설 부문 역시 100억원 미만 소규모 공사는 중소 건설업체에 직접 발주하고, 보안상 문제가 없는 공사는 경쟁 입찰에 부치기로 했다.

마곡단지에 총 3조2000억 투자

미래를 위한 투자 규모도 대폭 늘렸다. 대기업 그룹이 연초 투자 규모를 확정한 뒤 새로운 투자계획을 내놓는 경우 역시 이례적이다. LG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건설할 ‘LG 사이언스 파크’에 8000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이곳은 그룹의 미래 기술과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는 ‘메카’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당초 LG는 이곳에 2020년까지 2조4000억원을 들여 13만여㎡(약 4만 평)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를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를 확대해 17만여㎡(약 5만3000평) 규모로 키우고, 투자금액도 총 3조2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규모가 커짐에 따라 사이언스 파크에 입주할 계열사도 늘어난다. 지난해 분양받은 1차 부지에는 전자·디스플레이·이노텍·화학·하우시스·생명과학 등 6개사의 연구개발(R&D) 부문이 입주한다. 2차 부지에는 LG유플러스 등 5개사 연구인력이 합류한다. 입주 계열사 수가 6개사에서 11개사로 늘면서 근무하는 R&D 인력도 2만여 명에서 3만여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LG가 운용 중인 서울 서초 R&D캠퍼스는 주로 전자 부문에 연구개발이 국한돼 있다.

LG - 중기·벤처 공동연구 메카로

 LG는 이달 중 서울시와 부지 확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뒤 8월에 공고가 나는 대로 신청하기로 했다.

 특히 LG는 사이언스 파크를 그룹 R&D 거점만이 아닌 동반성장 실현을 위한 장소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중소·벤처 기업의 신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R&D 컨설팅을 위한 동반성장 아카데미도 운영하기로 했다. 또 이공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인턴과정을 운영해 ‘미래 IT 융합 기술’을 가르치는 장소로 활용하고 이들을 채용과도 연계한다는 복안을 마련했다. 그의 이런 구상은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과 미국 방문에 동반했을 때 이미 윤곽을 밝힌 바 있다. 구 회장은 당시 “국내외에서 공부한 우수한 인재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외국 기업에 비해 손색없는 연구시설을 갖추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LG 관계자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의 연구인력들이 사실상 한곳에 집결하는 만큼 협력업체와의 R&D도 훨씬 광범위하고 통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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