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패질·톱질·못질이 바로 삶의 디톡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3호 26면

저자: 린다이링·잔야란 역자: 이은미 출판사: 다빈치 가격: 2만2000원

이 책의 성격을 뭐라고 규정해야 정확할지는 잘 모르겠다.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은 에세이인 듯한데 책장을 후루룩 넘겨본 첫인상으로는 목공예에 관한 실용서 같다. 답은 둘 다. 직업으로서 혹은 취미로서 목공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무에 빠져 나무를 닮아가게 된 목공 장인 16명의 사연에 작업과정 설명과 간단한 목공법을 곁들였다. 장인이라는 표현이 좀 지나치다면 그저 ‘목수’라고 해도 좋겠다.

『나무를 닮아가다』

이 책의 독자가 될 현대 도시인들에게 목수란 존재나 목공이란 분야는 사실 낯설 것이다. 가구란 육중한 원목으로 만든 고가의 앤티크 가구 아니면 실용적인 서구의 조립 가구 정도로 양분돼 떠오를 뿐. 손수 만들어본다는 건 더 머나먼 얘기다. 대체 장도리와 못을 쥐어본 지가 언젠지 까마득하니 말이다.

그런데 목수 16명의 ‘목공 예찬’을 듣다 보면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럼 나도 한 번…?’ 하는 마음이 슬며시 생긴다. 가령 대만의 손꼽히는 목공 전문가로 3대째 더펑 목재를 운영하고 있는 이원슝은 전문가답지 않게 “숟가락 만들기부터 시작해보라”는 소박한 조언을 한다. 그는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워온다. 비싼 나무보다는 “저렴한 자연 소재”라고 부르는 잡목에 애정의 눈길을 보내는 점이 뜻밖이다.

35년간 클래식 기타를 만들어온 또 다른 목수 저우중디의 얘기도 흥미롭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예술 과목을 의무적으로 수강하게 돼 있는 학교 규정 때문에 악기 제작 과정을 듣게 됐다. 바이올린 만들기를 시작으로 비올라와 첼로를 거쳐 클래식 기타로 옮겨갔다. 기타 만들기에 흥미가 동한 그는 에스파냐의 기타 장인을 찾아가 배울 정도로 열의를 불태웠다. 그가 만든 기타는 르네상스·바로크·고전주의·낭만주의 등 시대별로 푸런(輔仁)대학에 소장돼 있을 정도다. 흥미로운 건 그가 ‘전업 목수’가 아니라 주중엔 대기업 간부사원이라는 점. 직장생활과 기타 제작의 가치를 똑같이 소중히 여긴단다.

‘앙꼬’는 이 다음부터다. 목공예에서 얻는 힐링, 치유에 대한 목수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머리 복잡한 화이트칼라 직종 종사자들에겐 특히 그럴듯하게 들릴지 싶다.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말루프의 모작부터 시작해 불과 몇 년 만에 전문가 수준으로 뛰어오른 양젠런. 저자들은 전자제품 무역업체를 경영하던 그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어떤 취미에 열정을 가지고 집중할 때 그 취미는 당신의 해독제가 된다”고 설명한다. 사업가로서 하루 24시간, 주 7일 일만 생각하고 살던 그에게 우연히 시작한 목수 일은 이젠 스트레스 해소를 넘어 인생을 활기차게 구동하는 소금 같은 존재가 됐다.

목공이 주는 힐링 효과는 성인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위한 원목 장난감 공방을 운영하는 다빙의 주장이다. 단 부모들이 참을성을 갖고 지켜본다는 전제가 지켜져야 한다. ‘느림’과 ‘책임감’ ‘불완전함’ 등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 게 요점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작은 목공이었지만 16명의 목수는 대패질과 톱질을 하고 못을 박는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은 몰두하는 순간의 해방감일 수도 있고, 나무의 물성(物性)에서 기인하는 어떤 철학적 깨달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변화다. 목수들의 한결같은 고백이자 이 책을 읽고 나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가치이기도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