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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리더는 욕먹기 십상…두꺼운 얼굴로 버텨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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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호 22면

잰 존스 시저스엔터테인먼트 수석부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최초 여성 시장으로 8년을 재임했다. 최정동 기자

1982년 12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공항. 로스앤젤레스발 비행기에서 30대 금발 여성이 살짝 찌푸린 표정으로 내렸다. 아버지가 캘리포니아에서 운영하는 대형 수퍼마켓 체인에서 마케팅총괄로 일하던 잰 존스(현재 64세)다. 고객 유치를 위해 매장에 슬롯머신을 설치하자는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해 온 참이었다. 사업을 위해선 꼭 필요한 선택이었지만 내키지는 않았다. 고향 LA에서 가업을 이으려던 그에게 카지노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인연이 없는 곳처럼 보였다.

인천 영종도 투자 위해 한국 온 잰 존스 시저스엔터테인먼트 부회장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라스베이거스는 곧 그의 가족과 사업, 나아가 정치 경력의 터전이 됐다. 결혼 후 시댁 식구들과 자동차판매업을 하며 라스베이거스에 뿌리를 내렸다. 사업 성공 후엔 정치로 눈을 돌려 91년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했다. 라스베이거스 사상 최초의 여성시장이다. 재임에 성공해 8년간 시정을 이끌며 ‘라스베이거스의 CEO’로 불렸다.

존스의 리더십 아래 라스베이거스는 성장을 거듭했다. 연간 1500만 명이었던 방문관광객이 3600만 명으로, 호텔 객실 수는 9만 개에서 15만 개로 늘어났다. 14일 방한한 존스는 인터뷰에서 “내 재임 기간 중 라스베이거스는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도시 중 하나였다”며 “카지노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와 컨벤션 산업을 아우르는 방식의 개발 전략이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의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최초 여성 시장으로서 외유내강의 리더십을 보인 것도 주효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ㆍ심리학을 공부한 그는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의 여성리더십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내친김에 99년엔 민주당 후보로 네바다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지만 유방암 투병 등 악재가 겹치며 패했다. 그의 투병 유세는 지역 언론은 물론 뉴욕타임스(NYT) 등 미 전역에서 다뤄지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존스는 재계로 복귀해 99년부터 카지노ㆍ복합리조트 기업인 시저스엔터테인먼트의 수석 부회장으로 일해왔다.

그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인천 영종도다. 시저스가 동남아 화교계 부동산 개발회사인 리포그룹과 손잡고 컨소시엄인 LOCZ로 추진 중인 인천 영종도 경제자유구역 복합리조트 건설 사업을 추진 중이어서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호텔ㆍ컨벤션센터ㆍ공연장ㆍ쇼핑몰 등의 건설을 목표로 한국 정부에 1월 말 사전심사를 신청해 놓았다.

사업 성공 위해선 망가지는 것쯤이야
-자동차 판매업에서 성공을 거두며 정계 입문 발판을 마련했는데. 성공 비결은.
“미국에서 자동차 판매원은 인기가 없다. 차를 비싸게 파는 데만 혈안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우선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려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야 하기에 작정하고 망가지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너무 싸구려예요’라는 컨셉트로 광고 시리즈를 만들어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입고 직접 출연했다. ‘남편이 5캐럿(carat) (다이아몬드)을 사준다더니 글쎄 당근(carrot)을 다섯 개 갖다줬지 뭐예요’라는 식이었다. 광고는 조금씩 호응을 얻었고 3개였던 매장은 11개로 늘어났다. 인지도가 높아진 건 뜻하지 않은 보너스였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시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모험이었다. 하지만 사업을 성공시키고 나니 행정에 욕심이 생겼다. 지역 발전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덜컥 출마를 결심했는데, 선거 운동 과정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당선 후 처음 6개월 동안 정부와 기업의 차이를 알기 위해 주요 결정은 보류하고 공부만 했다. 기업은 최고경영자 개인의 재량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조직이지만 정부는 혼자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적응이 필요했다. 재선 때 72%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니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자부한다.”

-최초 여성시장으로서 차별화 전략은.
“리더십엔 성별 구별이 없다. 좋은 리더십과 나쁜 리더십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성 리더가 워낙 적다 보니 ‘어디 잘하나 보자’는 식의 주목을 더 받는 게 아닐까. 남자가 강경하면 좋은 리더라고 평가받지만 여자가 그러면 지나치게 밀어붙인다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런 공격도 무던히 버텨낼 줄 알아야 한다.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눈물을 자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연설을 하기 직전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연단에 섰는데 눈물이 계속 나오더라. 내 정적들에겐 공격의 대상이 됐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거두절미하고 무조건 사과했다. 거듭되는 해명은 스캔들의 수명을 연장시킬 뿐이다.”

존스의 리더십은 시장으로 일한 첫날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신임 시장에게 항의할 것이 있다며 200여 명의 노숙인이 시청으로 몰려와 시위를 벌이면서다. 직원들은 경찰력을 동원해 노숙인들을 강제 해산시키자고 했지만 존스는 노숙인들과 대화에 나섰다. 노숙인들과 마주앉아 요구사항을 듣고 그들의 재활을 위한 복지시설을 짓고 관련 위원회도 설치해 큰 호응을 받았다. 마냥 부드럽기만 했던 건 아니다. 한 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갔다.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300억 달러(약 33조원)를 대중교통 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다. 관광객뿐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생각해야 장기적 지역 발전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33조원 규모 대중교통 사업 밀어붙여 성공
그의 인생 최대의 시련은 98년 유방암 진단을 받으며 찾아왔다. 유방절제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후 화학치료를 받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그 와중에 존스는 99년 네바다 주지사 선거에 출마를 결심했다. 공화당 후보의 승세가 뚜렷해 민주당 후보가 사퇴한 상황이었다. 존스는 고민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은 그를 지지하기 위해 워싱턴DC로 초청해 둘이 함께 조깅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존스가 유방암을 잘 이겨내고 있으며 주지사 후보로서 손색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존스의 패배였다.

-승산이 높지 않은데 출마한 이유는.
“유방암과 싸우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암이 꼭 인생의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나누고 싶었다. 물론 시장을 하면서 더 큰 정치적 포부를 갖게 된 것도 있었다. 후회는 없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항상 죄책감을 갖고 살아왔다. 얼마 전 휴가차 방문한 곳에서 너무도 화목해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아이들과 저렇게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항상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30초도 안 돼 셋 모두에게서 답장이 왔다. ‘무슨 소리예요, 난 엄마가 자랑스러워요’라는 내용으로. 그때 정말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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