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유엔결의 위반' 증거 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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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5일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특별회의에 출석해 정황 증거들을 제시하며 "이라크는 유엔 무장해제결의안(1441호)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파월 장관은 이날 CNN방송 등을 통해 생중계된 90분간의 연설에서 이라크 측의 사찰 방해 모의를 감청한 오디오테이프 등 약 30개의 시청각 자료를 동원,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은폐 관련 정황을 설명했다. 연설에는 조지 테닛 CIA국장이 배석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연설은 안보리가 미국의 이라크 군사공격을 지지할지, 아니면 무기사찰을 연장할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4일 영국 TV와 회견에서 "이라크는 알 카에다와 전혀 관계가 없으며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결의안 명백히 위반"=파월 장관은 이라크가 유엔사찰을 방해했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데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이라크 관리들의 '증거은폐 구수회의'나 유엔 사찰관을 만날 예정인 자국 과학자들에게 미리 '모범 답변'을 주지시키는 내용 등을 감청한 테이프도 안보리 대표들에게 들려줬다. 이라크 병사들이 장비를 옮겨 묻는 장면을 촬영한 위성사진도 공개됐다.

파월 장관은 "감청 녹음들은 이라크 정부가 조직적으로 유엔 사찰 활동을 방해해왔음을 입증하는 증거"라며 "이라크는 유엔 결의안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장관은 또 이라크 망명자 세명의 증언을 토대로 이라크의 생화학무기 은닉 및 이동이 가능한 생물무기연구소에 대한 정보도 내놓았다.

이라크의 알 카에다 연계설과 관련해서는 "요르단 출신 생화학 테러전문가인 아부 무사브 자르카위(36)가 바그다드에 체류하며 생화학무기 관련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보리 설득이 과제=15개 안보리 이사국들이 파월 장관이 공개한 증거를 어느 정도 수용할지가 과제다. BBC방송 등 외신들은 "연설은 결정적인 증거(smoking gun)를 제시하기보다 주장하는 데 초점을 뒀다"며 증거의 설득력을 깎아내렸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4일 "이라크의 평화적 무장해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다"며 "전쟁은 최악의 해결책"이라고 공격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반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5일 의회에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며 "영국은 유엔의 두번째 결의 없이도 이라크 공격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안보리 이사국 중 미국.영국.스페인.불가리아 등 4개국만이 사찰을 조기에 종료하고 공격을 개시하는 데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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