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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언의 아내」|아그네스·김여사의 봄| 애정어린 「손의봉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가 들에서 같이 일하는 동안은 바로 황금의 시간입니다』 「코리언」의 아내 「아그네스·데이비스·김」여사(68)는 남편 김주항씨와 함께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흙 속에서 일해온다.
33년전 한국인과 결혼, 자서전 「나는 코리언의 아내」(1959년 발간)의 저자로 기억에 새롭다.
여사는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났으며 「컬럼비아」대학 가정학과를 나왔다.
그는 모든 시간을 밭일과 거기서 거두어지는 수확물로 통조림을 만들고 백가지 무늬의 수직 을 만드는데 보냈다.
「아메리카」 인이지만「아메리카」와는 너무나 이질적인 생활태도는 본보기로 남겨지고 그들이 거둔 과실처럼 알찬 것이다.
맑은 공기가 가득하고 이른 봄볕이 따갑게 내러쬐는 상오.
듬성듬성 무덤이 보이고 앙상한 돌산을 따라 들어선 곳에 반쯤 기울어진 낮은 울타리와 대문이 보인다.
검정개가 정신없이 짖어되는 마당에서 일손을 멈춘「데이비스·김」여사.
『「미스터·김」은 도산선생 30주년추모식에 가고 없군요.』아직도 한국말이 서투르다.
『봄이되면 일손이 바빠지고 모든 준비를 해야합니다. 』여사는 먼저 딸기 손질에서부터 봄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딸기는 쇠진한 묵은 뿌리를 가려내고 초벌 거름을 두둑히 준다.
그리고 포도덩굴의 가지를 일일이 손질해야 소담스런 포도가 열릴 수 있다고.
봄 여름 가을동안 끊일 새 없이 갖가지 열매가 연다.-딸기 고구마 자두 호박 오이 포도 홍당무 당근 콩등….
과실이 있을 때는 항상 통조림을 만들어 서늘한 지하실에 보관한다.
집 앞에 펄쳐진 5천평 가량의 기름진 밭.-거기서 허리를 굽혀 쉴새없이 일하는 노부부.
『무슨 일을 도와 드릴 수 없을까요.』하고 물으면 도리어『아뇨, 일이 많지 않습니다』 라는 대답이라고 23세정도의 청년이 말해준다.
그를 노부부는 청년2명과 함께 생활하고 이곳 일을 가르친다고 한다. 신문 투고를 인연으로 맺어졌다는 한 청년은 『숭고한 사랑과 근면을 결합시긴 할머니』라고 말한다.
겨우내 온실에서 자란 「시클라멘 」과 「칼라·릴리」가 따뜻한 공기 속에 활짝 피어있다. 「시클라멘」의 꽃잎을 만지는 할머니의 손길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깊게 주름이 파인 두텁고 거친손.
매주 수요일 종암동 서울상대에 강의하기 위해 아침7시에 출근, 2시간이나 걸리는 곳을 다녀온다.
밭일외에 그는 대학에서 배웠다는 「러시아」수무늬, 「스페인」수무늬 등을 꼼꼼이 짜고있다. 여성「클럽」이나 모임에 참석하는 때가 있느냐고 묻자 『집안일 때문에 그런 시간이 없어요.』라고 잘라 말한다.
『땅은 우리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대지의 질서에 봉사해야합니다.』 거뭇거뭇 봄기운을 품은 땅을 가리키며 여사는 말한다.
그의 참된 모습은 대지를 끊임없이 쓰다듬어 가는 용기에 있는 것이다. 1939년 봄, 이 계곡에다 부부가 손수 지은 잿빛 돌집이 정오의 햇살 속에 아름답다.
흙을 발견하고 흙 속에서의 생활을 무한히 넓혀나갈 과정에 노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서있다. 봄의 출발. 그들의 농원에 좋은 수확이 있기를 기원한다.<김정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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