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명이 아니라 진상을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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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현정부와 신정부 측은 2억달러 대북송금 사건을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로 기조를 세운 듯하다.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및 신정부 측 핵심들의 언급이나 민주당 의원총회의 토론 기조는 여야의 정치적 합의로 김대중 대통령과 핵심 관련자들이 적당한 선에서 설명.사과하고 이 사건을 종결하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여권의 이런 얼렁뚱땅식 정치적 절충의 해법에 동의할 수 없다.

거듭 제기하지만 이 사안이 대통령의 '통치권적 결단'의 범주에 속하는가라는 문제다. 金대통령은 그런 뜻으로 말했지만 朴실장은 현대 측의 독점권 확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해 이 사안의 국가행위 성격을 부정했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조차 사안의 성격을 달리 보고 있다. 또 양자의 말대로라 해도 최근 밝혀지는 것처럼 청와대와 국정원, 산업은행 등 국가기관이 사기업의 '불법적'행위를 그렇게 협조할 수 있느냐, 또 그렇게 한 뒤 유야무야로 끝내는 것이 합당하냐는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를 인정하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통치행위라는 명목 아래 정경유착이 합리화될 수 있다.

여권은 특검을 할 경우 기밀이 통제될 수 없어 국익을 손상시킨다는 논리로 정치적 해결의 당위성을 펴고 있다. 실체가 드러나면 북한을 자극해 남북관계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의지가 없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진실규명을 통해 이 정권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꼼수로밖에 안보인다.

송금 시점, 북한의 계좌 등이 속속 드러나는 마당에 해명이니 사과니 하는 말로 덮자고 한다면 누가 승복하겠는가.

대통령과 관련자들은 해명이 아니라 진실을 털어놓아야 한다. 그후 그에 대한 철저한 검증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국기 문란적'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남북관계의 성숙한 발전을 위해서도 정치적 절충은 배격돼야 한다.

여권은 드러나는 사실에 무조건 '모르쇠'로만 부인할 것이 아니라 특검을 통해 진실이 드러나게 하라. 그것만이 신정부가 새로운 개혁을 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