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약 손대지 않으면 재정은 구멍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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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첫 ‘국가재정 전략회의’를 가졌다. 회의에서는 대선공약 실천을 위한 단기 재원조달 방안과 함께 앞으로 5년간 중장기 재정운용의 방향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재원마련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은 대선공약의 실천은 불가능하다. 또 한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공약과 무관하게 국가재정을 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공약 이행과 재정운용의 접점을 찾는 일이 국가재정정책의 핵심이다. 돈을 어디다 쓸 것인지와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함께 놓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대통령이 전 국무위원과 함께 공약 실천과 재정운용의 연계성을 꼼꼼히 따져본 것은 여러모로 뜻깊다.

 그러나 이날 논의는 쓸 곳인 공약은 그대로 둔 채 재원조달에만 초점이 맞춰진 기색이 역력했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지난 대선에서 공약재원 조달방안을 가계부처럼 꼼꼼하게 점검해서 국민에게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새 정부는 공약이행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서 반드시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다 보니 공약의 현실성이나 적절성, 시급성에 대해선 전혀 거론되지 않은 채 오로지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의 조달방안만 주로 논의됐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해 세입을 늘리고, 각 부처가 세출구조조정을 통해 지출예산을 줄여 공약이행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경기가 바닥인 상황에서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의 축소는 모두 추진하는 데 무리가 있으며, 추진하더라도 세수 증대효과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세금을 쥐어짜도 더 걷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지난 1분기에 국세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조원 덜 걷혔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수가 구멍 날 공산이 커진 것이다. 또 각 부처의 세출예산은 이미 국회의 동의로 확정된 것인 데다 대부분 경직적이어서 임의로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출이 확정된 예산을 회계연도 중간에 뚝 잘라 공약이행 재원으로 돌리는 것은 쉽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 세수를 늘리기 어렵고, 세출을 줄이지 못한다면 새로 추가된 공약예산을 줄이는 방도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공약도 이행하고 재정 건전성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놨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꿰어 맞춘 비현실적인 것일 공산이 크다.

 이제 정부는 냉엄한 재정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그대로 전해야 한다. 박 대통령도 그제 “공약은 가능한 한 지켜야 하지만 후보 시절 재정추계가 정확히 안 된 것도 있을 수 있다”며 “(공약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고 보완하겠다”고 했다. 공약의 완전이행만을 고집하지 않고 현실에 맞춰 고쳐 나가는 융통성을 발휘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원조달 방안 마련에 앞서 공약의 적절성부터 다시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