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방송, 65세 이상 방송인 선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때아닌 시조 창이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심사위원 앞에 선 김석곤(68)씨가 갑자기 "재주 하나 보여 주겠다"고 한 것이다. 창이 끝나자 또다른 레퍼토리가 시작됐다. 영화 '연산군'에 나오는 연산군과 신하의 대사를 1인 2역을 해 가며 재연했다. "와, 대단하다" 보던 사람들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조은방송 스튜디오는 이렇게 실버들의 '끼 경연장'이었다. 오는 4월 노인 및 장애인 전문 방송으로 출범하는 조은방송이 실버 방송인을 뽑고자 실기 테스트를 하는 자리였다. 5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1차 관문을 통과한 9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이력은 화려하다. 대학교수.대기업 임원.교사.보험회사 판매 여왕….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 65세, 최고령자가 77세였다. 이날 실기 테스트에서 이들은 뉴스 진행자가 돼 보기도 하고(사진) 직접 원고를 써서 리포터 역할을 하기도 했다. 9명 모두 기회가 날 때마다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는 걸 잊지 않았다.

준비된 노래나 연기를 하고, 자신이 쓴 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는 방송계 사람 이름을 나열하며 애교 섞인 압력을 넣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실수도 연발이었다. 대본에 적힌 '애드립'이란 지문을 그냥 읽기도 했고, 대본 읽는데 너무 열중해 마이크의 존재를 잊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대본 읽기를 국어책 낭독하듯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모두 비장함이 느껴질 정도로 진지했다. 남들이 웃어도 자신은 결코 웃지 않았다. 모두들 과거의 기득권을 버리고 '제 2의 인생'을 찾으러 왔기 때문이다.

조은방송의 모화영 팀장은 "이들 중 대부분은 노인 대상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리포터로 활동하게 된다"며 "앞으로 노인 비디오 저널리스트(VJ)도 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