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과 화염속의 긴하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베트콩」의 구정기습때 우리 파월기술자들은 목숨을 걸고 직장을 지켰다. 기술자들이 혼연일체가되어 총을 들고 자위대를 편성, 물샐틈없는 경계망밑에 밤을낮삼아「베트콩」의 기습을 막아냈다. 여기 본사에 보내온 파월기술자들의 직장사수기를 소개한다.
구정 며칠전부터 거리엔 사람의 물결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시장엔 온갖 상품과 식료품등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집집마다 문전엔 폭죽을 매달아 놓고 아이들은 이를 계속 폭발시킨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는 총소리로 착각을 하게 될 정도여서 가뜩이나 「베트콩」의 기습, 폭파가 심한 요즘이라 생소한 한국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랄수밖에없었다.
이폭죽 한줄(1백개의 화약이 줄에엮어져있음) 에 80「피아스터」 (2백원정도)나 하는데 1가구당 보통10여줄의 폭죽을 준비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구정축제때 월남서 소비되는 폭죽용화약의 전소비량은 약10억 「피아스터」 (25억원)어치나 된다니 우리로서는 이해할수없는 일이다.
폭죽의 유래는 구정을맞아 복을 받고자 집안에있는 마귀를 내쫓기위한 관습에서 나온 것이라한다.
시가지엔 꽃장수가 많아 꽂향기가 전 시가를 휩싸고있는 모습 또한 볼만했다.
과실과 꽃도 축제용으로 사간다는 것이다.
구정날은 한국인 10여명이모여 그런대로 조촐한기념을 했다. 밥과 김치로 아침을 먹고 USAID (미경제협조처) 소속 영사실에서 영화감상을 했다.
31일 새벽 3시쯤.
요란한 총소리가 「칸토」시가를 진동시켜 잠자던 동료들과 급히 일어나 밖을 살펴보니 「베트콩」 수십명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총격전을 감행하고있었다.
우리 숙소에서 약2백미터 떨어진곳에 있는 월남군 제4군단사령관 (「메콩·델터」관할) 에 공격을 감행해온「베트콩」과 이에 응전을 하고있는 월남군의 총소리였다. 이것이 바로 월남전역에 걸친 총공세의 시작이었다.
숙소인 2층에서 내려다본 「칸토」시가는 온통 총성과 화염에 휩싸여있어 언제 어떻게 될지몰라 도무지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밝히고 아침에 「칸토」 시내에 파견돼있는 80여명의 한국인끼리 비상망을 통해 연락해보니 모두가 무사하다고해서 한숨을 돌렸다.
저녁엔 이곳에 파견돼온 태권도 교육단장 최범섬소령의 협조로 「카빈」 M2한자루씩을 지급받고 자위책을 세웠다.
만약 「베트콩」 의 기습을 받는다면 즉각 대전할 태세를 갖추었다.
이미 수십가옥이 총탄의 세례를 받고 벌집처럼 구멍이 나있었고 창문이 산산조각이 났었다.
곳곳에 널려있는 「베트콩」의 시체를보고 이젠 물러갔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곧이어서 또 기습작전이 벌어지는데는 아연할수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은 각각 총을 들고 4명씩 5개조로 편성하고 교대로 불침번을 섰으나 잠을 제대로 자는사람은 없었고 모두 뜬눈으로 지루한 밤을 새웠다.
날이새자 우리는 다시 「위험」속을 지나 각각 직장으로 출근하지 않을수 없었다.
결국 월남에 온 우리기술자들이란 생명을 걸고 도박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즉 무조건 월남에 오면 돈을 벌수있다는 사고방식은 전혀 오산이며 무엇보다도 신변의 위험에 처했을때 대응할만한 보안조치가 급선무일것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