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열리고, 북 카페도 있는 … 여긴 사찰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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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무각사에서 열리는 ‘보물섬’ 장터를 찾은 시민들이 흥정을 벌이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11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상무지구 무각사(無覺寺).

 절 앞마당이 왁자지껄했다. 재활용품 시장인 ‘보물섬’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일일 상인이 된 어린이들이 “어서 오세요” “이것 좀 사세요”라고 외치며 손님들의 시선을 끌었다. 마당에 벌여 놓은 좌판에는 동화책·장난감과 옷가지, 생활용품 등이 진열돼 있었다. 주말을 맞아 장터를 찾은 사람들은 쓸 만한 물건을 찾아, 또 구경을 하느라 좌판 사이를 이리저리 누볐다.

 #한 시간 뒤 같은 경내의 ‘로터스(Lotus)’.

시민들이 무각사의 문화 공간인 ‘로터스’ 내 북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보물섬’ 장터를 돌아본 손님 등이 북 카페의 한쪽에서 커피 등을 마시며 담소하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북 카페 옆 갤러리에서는 서양화가 우제길씨의 77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로터스 맞은편에 있는 공양간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토요일마다 단돈 1000원에 파는 국수를 먹으러 가는 것이었다. 공양간 옆 한옥 ‘사랑채’에서는 발우 비빔밥과 수제비, 전통 차 등을 팔고 있었다.

 광주 상무지구 5·18기념공원 안에 자리 잡은 무각사가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도심 속 사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불도를 수행하는 사찰 본래의 도량(道場) 역할 외에도 장터와 템플스테이 등을 통해 시민들 사이로 파고든 것이다. 문화예술 공간의 기능도 겸하고 있다.

 여의산 자락 1만6000㎡에 자리 잡은 무각사는 열린 공간. 담장이 하나도 없어 5·18기념공원과 절 사이로 난 산책로들을 통해 언제든 오갈 수 있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것도 이 같은 개방성 때문이다.

 굵직한 문화예술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9월 7일~11월 11일) 기간에는 문화관 1·2·3층 건물 전체가 비엔날레 전시 장소로 변신했다. 독일 출신 작가 볼프강 라이프가 쌀과 헤이즐넛 꽃가루를 이용해 광대한 우주 안에서 제각각 소우주를 이루고 있는 개인들을 표현한 작품으로 관람객들을 끌어모았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무각사 대웅전 앞에는 연등이 달렸다. [프리랜서 오종찬]

 사찰 안 문화공간인 로터스에서는 각종 서적과 유명 작가의 작품을 즐기며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다. 시민들을 위한 사찰음식 체험과 다도·요가 등 알찬 강좌도 많이 한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절에서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것도 이 절만이 지닌 매력이다. 목탁 소리가 들리는 로터스 2층에서 묵으며 직장생활과 가사·육아 등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털어낼 수 있다.

 나눔 행사도 수시로 펼치고 있다. 무각사 신도들이 꾸린 자비봉사단은 매년 석가탄신일(5월 17일)을 앞두고 사찰음식 경연대회를 연다. 대회에 출품된 음식들은 소방대원과 환경미화원 등에게 제공한다. 올해 경연대회가 열린 14일에는 15개 팀 60여 명이 음식을 만들어 소방대원 150여 명에게 대접했다.

 매년 중복과 동지 때는 혼자 사는 노인들을 초청해 삼계탕과 동지죽을 나눠 준다. 스리랑카·미얀마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법회나 건강검진, 치과치료 등도 무각사의 주요 봉사활동 중 하나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보물섬’은 2009년 주지인 청학 스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재활용 나눔장터. 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천주교·원불교 등 4개 교단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장터 판매자들이 낸 10%의 수익금은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기부한다. 이정범 무각사 문화관장은 “보물섬은 청소년들에게 나눔과 자원 절약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효과가 커 시민들의 참여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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