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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주부 맨손 창업 … 발품 팔면 곳곳에 도우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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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평범한 주부에서 각종 창업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매출 4억원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이정미 제이엠그린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양념·이유식용 냉동 용기 ‘알알이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대한민국은 창업하기 좋은 국가인가. 이정미(47) 제이엠그린 대표는 서슴없이 “그렇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 한국은 ‘40대 아줌마가 종잣돈도 없이 회사를 세워 홈쇼핑 황금 시간대에 진출할 수 있는 나라’다.

특허·생산·판매 … 지원사업 모두 도움 받아

 이 대표는 양념·이유식 등을 간편하게 냉동하는 용기 ‘알알이쏙’으로 지난해 매출 4억원을 기록했다. ‘2012 여성발명·기업인’으로 뽑혀 특허청장상도 받았다. 올해 매출 목표는 10억원, 하반기엔 수출에 나설 계획이다. 오는 16일엔 현대홈쇼핑에도 진출한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이런 성과를 특별한 경력이나 자본금 없이 이뤄냈다. 각종 창업 지원사업 덕분이다. 이 대표는 “특허 출원부터 시제품 제작, 제품 생산, 사무실 임대, 직원 고용, 판로 개척, 홍보, 수출 준비까지 모두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로지 지원사업으로 이룬 성과라는 건가.

 “그렇다. 나는 살림만 하던 주부였다. 창업 경험이나 관련 지식도 없었다. IMF 외환위기 때 남편이 운영하던 가방 하청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사업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창업할 엄두도 내기 어려웠겠다.

 “생계마저 어려운 상황이었다. 남편만 의지하고 살던 내가 동네 전자부품 공장에 취직했지만 몇 년을 일해도 앞길이 막막하더라. 평소에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을 두 종류씩 보면서 제품 아이디어를 궁리했다.”

신문 보면서 제품 아이디어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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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표는 2002년 브래지어용 실리콘 패드 특허를 출원하면서 창업의 싹을 틔웠다. 빚을 내 월 10만원씩 갚아 가며 출원 비용을 댔다. 언젠가 시작할 사업에 대한 투자였다. 2007년 첫 특허를 받았지만 시제품을 만들 비용이 문제였다. 이 대표는 한국여성발명인협회에 “개인에게도 시제품 제작비를 지원해달라”는 긴 편지를 써 300만원을 지원받았다. 시제품은 만들었지만 실제 제품을 만들 비용이 문제였다. 2008년 당시 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의 아이디어 상업화 지원사업단에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손편지와 함께 지원서를 냈다. 이듬해 그는 첫 개인 수혜자로 뽑혀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는 못했다. 초음파조류퇴치기를 만들었는데, 엄청난 성능 인증 비용까지는 미처 계산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너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아이템을 하면 안 된다”며 자신의 실패담을 말했다. ‘알알이쏙’은 그가 눈 돌린 ‘작은 아이템’이다. 출근 전 급히 아침밥을 지을 때 마늘 등 얼린 양념을 녹이는 게 불편했던 개인적 경험에서 나왔다. 말랑말랑한 재질로 꾹 누르면 바로 나오고 눈금을 표시해 계량도 되게 했다. 이 제품 역시 지원비 700만원을 받아 만든 것이다.

창업 1년 만에 연 매출 4억 올려

 성공 기미가 보이자 직장을 그만두고 2011년 드디어 창업을 했다. 코엑스·킨텍스 등에서 열리는 각종 상품 전시회·박람회에 중소기업청 등으로부터 부스 설치 지원을 받아 홍보에 나섰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히트500’ 홈페이지에 게재되면서 체험단의 입소문도 나고 바이어들의 연락도 왔다. 온라인 쇼핑몰, 롯데마트·홈플러스에도 입점했다. 중소기업청에서 지원한 공동 사무실이 상품으로 비좁아지자 수원여대 창업보육센터로 옮겼다. 시니어 채용, 지역 일자리 지원사업을 받아 월급의 절반만 부담하고 직원도 네 명 구했다. 수천만원의 비용이 드는 홈쇼핑 진출도 중소기업청의 공모를 통해 무료로 하게 됐다. 김인권 현대홈쇼핑 대표는 “이 대표가 ‘제2의 한경희’로 성장해 창조적 중소기업의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지난 3월 카피 상품이 시장에 나왔다. 이 대표는 법적 대응도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에 지원 요청했다. 그는 “인터넷만 검색해도 정말 많은 지원사업이 있다”며 “사업 자금이 있더라도 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아보면 사업성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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