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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과 불만의 사이|「밴스」특사 돌아간 뒤…한·미 공동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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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무장공비 서울침입과 미함 「푸에블로」호 남북사건 등 잇단 북괴의 만행에 대한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드러났던 한·미 양국간의 이견은 전례 없는 불협화음 속에서 15일 양국 정부의 공동성명이 발표됨으로써 일단 매듭지어졌다.
지난 11일 내한한 「사이리스·R·밴스」 미대통령특사를 맞아 12일부터 15일까지 네 차례 열린 한·미 고위회담은 북괴도발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보장문제를 에워싼 견해차로 난항을 거듭하다가 『만족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불만이랄 수도 없는』(외무당국자의 말) 어정쩡한 상태에서 닻을 내리고 말았다.
한국측이 가장 힘주어 역설했던 「공동보복」에 대한 미측의 보장언약이 「즉각 협의한다」는 정도밖에 명시되지 못했다는 사실, 그리고 청와대를 노린 공비침입사건을 「푸에블로」호 사건보다 가벼운 비중으로 다루어온 그 동안의 미측의 태도 등은 아쉬움을 넘어 지리적인 거리에서 오는 현실감각의 「한계」마저 느끼게 한다.
한· 미공동성명서는 ①최근의 북괴도발행위를 침략적 행위로 규정, 계속 될 때는 한·미 방위조약 테두리 안에서 취해야할 행동을 즉시 결정하고 ②한국의 안전이 위협받으면 즉각 협의하며 ③국방장관급의 연례회의를 열고 ④1억 「달러」 대한군원추가분에서 재향군인무장을 위해 경무기를 제공한다는데 합의했다.
이 공동성명 가운데 한국의 안보와 관련, 북괴의 도발행위에 대한 공동조처를 다짐한 것은 제2항뿐으로 이 대목에서 한·미 두 나라는 북괴의 청와대습격기도와 「푸에불로」호 납치사건 등을 「침략적 행위」로 규정해놓았다. 일반적으로 전쟁으로 이해되고있는 침략행위가 아닌 이 「침략적 행위」만이라도 계속될 경우 전쟁상태로 이끄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즉각협의」한다고 명시했다.
이 대목은 방어조약 제2조(외침위협이 있을 경우의 상호협의)를 재확인한 것이며 새로운 것은 최근의 북괴만행의 유형인 「게릴라」 침입과 불법납치행위도 조약상의 「외침」으로 해석해서 외침개념을 확대, 조약의 원용을 천명한 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같은 외침개념의 확대는 물론 조약 제3조(외침이 있을 때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를 「즉각·자동」출병으로 보완할 것을 요구한 당초의 정부입장에 비추어 볼 때 극히 「불만족스런 표현」으로 우리측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밴스」미대통령특사의 내한목적은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교섭을 위한 미·북괴간의 판문점 비밀회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설명, 비밀협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온 한국정부를 설득시키고 가능하면 불만까지 무마시키는데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었다.
따라서 「밴스」특사의 임무는 자연 우리 정부의 정확한 「의중타진」만으로 이미 그 한계가 그어져있었다고 하는 것이 외교관측통들의 견해였다.
그러나 「푸에블로」호 사건 이후 미국의 대북괴 유화태도에 항의해온 정부는 북괴의 도발행위 방지책으로는 「힘에 의한 응징」만이 유일한 방법이므로 응분의 보복조치를 취해야한다는 강경론으로 미측을 역설득, 공동보복에 대한 보장을 받아 놓을 속셈이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보복」은 전쟁유발가능성이 있으므로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케이스·바이·케이스」로 대처해야한다고 주장, 보복조처에 대한 보장을 꺼렸기 때문에 공동성명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북괴의 도발행위와 관련, 이번에 보다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안전보장책으로 ①북괴를 능가하는 군사력확보 ②북괴 도발에 대한 한국군의 독자적 반격권 ③「유엔」군 작전지휘권의 일부이양 등으로 집약되는 주체적 방어체제의 확립 ④군사력 증강을 위한 상당한 양의 군원증액 등을 각서형식으로 보장해줄 것을 강력히 제의함으로써 한국의 안보체제에 관한 문제들을 제기해놓았다. 따라서 문제제기만으로도 이번 회의의 의의는 일단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공동보복문제에 논의가 집중된데다가 안보문제는 「밴스」 특사의 이임사항에 해당되지 않았으므로 당장 아무런 결말은 없었으나 한국의 「의사개진」에 큰 역할을 했으리라는게 많은 외교관측통들의 견해다.
아뭏든 「밴스」 특사를 맞아 5일간 계속된 한·미간의 대화는 그 성과를 따진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안보에 관한 우리 정부의 양태가 전달되었고 최초로 대북괴정잭에 대해 미측과 다른 견해를 꾸준히, 용기를 갖고 대등한 위치에서 협의를 했다는 점에서 대미외교의 새로운 시작이라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석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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