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독립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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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완곡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최근 한은법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관치 금융체제를 완성 시키려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재무부는 한은법 개정안을 이미 완성하고 금융제도 심의회에 넘겼다한다. 재무부가 개정하고자하는 골자는 ①금통위를 정책위원회로 개편하고 구성원을 현재의 9인에서 7인으로 줄이며 ②금통위소관이었던 한은에 대한 업무감독권을 재무부로 넘기고 ③한은 간부들의 임원권을 재무부로 넘기며 ④금통위의 금융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없애고 정부의 자문기관으로 금통위를 격하시킨다는 것 등이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어느 나라나 중앙은행 과 재무당국 사이에는 권력 다툼이 있는 것이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시도를 감행한 예는 일찍이 보기 드물 정도라 할 것이다.
물론 재무당국은 이와 같은 항세를 일소에 불이고 있는 것이나 금융계에서는 그 동안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당국의 시도를 계속 우려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그것을 전혀사실무근한 소리라고만 보아 넘길 수 없는 저류가 흐르고 있음을 부인할 길은 없을 것이다.
자유당시대 이후 중앙은행을 재무부가 완전지배 해보려고 한 시도는 끈덕지게 반복 돼왔던 것이 사실이며, 그 일단이 5·l6후에 실현된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5·16후 금통위결안을 각의가 「비토」할 수 있도록 한은법을 개정함으로서 이미 한은 반신불수가 된 것이며 통화가치의 안정을 중대하게 위협하는 통화금융체제가 전개되어도 한은은 이를 경고조차 합 수 없게 되어있다.
이와 같이 중앙은행인 한은이 무력하게된 원인은 한은 총재를 비롯한 주요간부가 실질적으로 정부에 의해서 임원 된다는 관행 때문인 것이며, 이에 더하여 금통위의 정책 결정권 이 5·16에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한은법 체제하에서도 중앙은행은 있으나마나한 실정인데 진일보하여 법적으로 금통위를 완전히 정부자문기관으로 격하시키고, 간부 임명권을 재무부로 넘기고, 또 그밖에 업무감독 및 감사권을 재무부가 장악한다면 중앙은행을 존속시킬 이유 그 자체가 없어진다고 하지 앉을 수 없다.
물론 이론상으로 금융과 재정이 호흡을 같이 해야하기 때문에 재무부 책임하에 재정금융 정책이 집행되어야한다는 근거를 당국이 제원 할 수는 있을 것이나, 재정과 금융이 반드시 선의의 조화를 이루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희소하다.
오히려 재정과 금융이 분리됨으로써 한쪽의 방만한 집행을 다른 한쪽에서 견제함으로서 균형 있는 정책이 마련될 수 있고, 또 그 결과로 통화정치의 안정이라는 자본경제제의 제일의적 정책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정과 금융위 관계는 이론적 필요성이나 타당성보다도 정치풍토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학계의 주장이다. 정치풍토가 영국과 같이 신사협정을 존중하는 경우에는 법적으로 정부가 금융에 개입하도록 해도 무방한 것이나, 반대로 정치가 금융에 개입하려는 경향이 짙은 풍토 밑에서는 아무리 법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중립성을 보장해도 중앙은행의 정책은 정치적 간섭을 받게 마련인 것이다.
이와 같은 각도에서 볼 때 이 나라의 금융질서를 그나마 유지하려 한다면 법적으로는 완전무결하게 중앙은행을 독립시켜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것이다. 법 체제상으로 아무리 독립성을 부여해도 실질적으로 중앙은행은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 나라 정치풍토에서 완전히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통화금융체제를 완성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이는 단호히 배척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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