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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귓속에는 반인반수 미노타우루스가 숨어있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귓속, 즉 내이(內耳)는 미로처럼 복잡하다. 의학용어로는 라비린스(Labyrinth)라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 신화 속 이야기가 숨겨져있다. 반인반수로 잘 알려진 미노타우루스가 갇힌 곳이 바로 라비린스다.

앞서 얘기했던 미노스왕은 괴물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자신의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소 괴물을 생포해 가두어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에달로스를 불렀다. 일거리가 또 하나 더 생긴 다에달로스는 자신이 창조해낸 것과 다름 없는 괴물을 가두기 위해 아주 특이한 감옥을 만들었다. 이 감옥은 창살은 없지만 누구던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도록 아주 복잡한 구조를 지녔다. 이것을 라비린토스(Labyrinthos)라 불렀다. 미노타우루스는 생포돼 라비린토스에 갇혔다.

라비린토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지하나 반 지하에 건설한 복잡한 구조의 건축물이다. 많은 방이나 통로들로 이루어진 이 건축물은 그 구조가 대단히 복잡했다. 르네상스 유럽에서는 이 구조를 응용해 정원에 높은 울타리로 갈래를 이룬 길들이 복잡하게 얽혀진 정원에서 만나게 됐다.

라비린토스에서 파생한 라비린스는 미로란 뜻이다. 우리 몸 속에는 속귀(內耳)와 벌집뼈(篩骨)가 라비린스다. 단면이 미로처럼 복잡하지만, 반드시 외부와 연결되는 길이 있다.

▲ 내이의 복잡한 구조는 미로라 불릴 만 하다

일단 괴물이 라비린토스에 갇히자 크레타인들을 괴물로부터 해방됐다. 하지만 애초부터 괴물을 죽일 마음이 없었던 미노스는 식인 괴물에게 먹일 인간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의 속국인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Aegeus)에게 전갈을 보냈다.

매년 일곱(혹은 여섯) 명의 청년과 처녀들을 조공(租貢)으로 바치게 한 것. 순전히 사료용으로 말이다. 미노스에게는 오락거리였지만 사랑하는 자식들을 조공으로 바쳐야 하는 아테네인들에게는 엄청난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난세에서 영웅이 나는 것처럼 테세우스(Theseus)는 이 시기에 나타난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잊혀진 왕자 테세우스가 부왕에게 자신이 괴물을 처치하겠다며 자원해 조공행렬에 나섰다. 테세우스는 헤라클레스를 광적으로 숭배했다. 자신도 역시 영웅이 되고자 갈망했던 인물이었다. 이미 헤라클레스를 롤 모델로 삼아 여러 괴물들을 처치한 스펙을 쌓았는데 이번 일도 자신의 영웅 등극에 걸 맞는일이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괴물을 어떻게든 죽인다 쳐도, 라비린토스에서 빠져 나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방법이 영 없는 것도 아니었다.

▲ 황소괴물을 때려 잡는 테세우스

미노스왕에겐 아리아드네(Ariadne)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를 보자 한 눈에 반해 버렸다. 한 눈에 반해 버리는 것은 아마 이 집안의 유전적 형질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사실 아프로디테가 테세우스를 위해 힘을 좀 쓴 결과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로부터 사랑의 맹세를 듣고 그에게 칼과 실타래를 하나 쥐어준다. 실의 끝을 입구에 묶고 라비린토스로 들어간 후 영웅급의 인물에 걸맞게 괴물을 처치하고 실을 따라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 혹은 열쇠란 비유로 사용된다.

황소괴물을 때려 잡는 테세우스

그런데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어디서 나온 아이디어일까? 아마도 그것은 다이달로스의 머리에서 빌려온 것 아닐까? 다이달로스는 미로를 만든 인물이기 때문에 미로를 빠져 나올 방책도 틀림 없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이야기의 숨은 주인공은 바로 다이달로스라고 말해도 틀린 것이 아니다. 다이달로스가 없었다면 미노타우루스도, 미로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미노타우루스의 이야기는 인간을 골려 줄려는 고약한 신들과 그 꼼수를 헤쳐나가려는 인간들의 의지로 점철된 이야기다.

테세우스는 자신과의 사랑에 빠져버려 아버지를 배신한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크레타 섬을 탈출해 아테네로 향했다. 중간에 낙소스(Naxos) 섬에 잠시 내렸는데 잠든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섬을 떠나 버렸다. 남겨진 아리아드네는 술의 신 뒤오니소스의 아내가 되었다.

자신을 도운 여인을 냉정하게 버리고 간 테세우스 역시 자신의 실수로 부왕 아이게우스가 자살하는 비극을 맞았다. 이런 경우를 인과응보라고 할 수 밖에.

자신의 딸이 테세우스와 도망친 사실을 안 미노스왕은 당장 다이달로스를 잡아들였다. 사건의 정황을 비추어 보면 도움을 준 이는 다이달로스밖에 없으니 왕은 주인 없이 남겨진 라비린토스에 다이달로스와 그의 어린 아들을 가두어 버렸다. 실타래 하나 가져오지 못했던지 다이달로스는 도저히 도저히 탈출할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설계된 자신의 라비린토스에 갇혀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아들과 함께 죽을 날만 기다리던 다이달로스의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러나 그는 라비린토스에 떨어진 새의 깃털을 모아서 밀랍으로 이를 조립해 최초의 날개를 만들어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아들이 바로 이카로스(Icaros)였다.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가는 바람에 추락하고 말았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가 미로처럼 복잡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다.

▲ 라비린스, 다이달로스, 이카로스가 등장하는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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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 원장 기자 live@indigo.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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