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건의와 대통령의 영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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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괴 무장공비 남침사건 등에 관한 대정부 질의에 대한 공동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연일회의를 거듭해 오던 국회 국방·외무·내무연석회의 7인 소위는 ⓛ미국대통령에게 한·미방위
조약 보완, 대한군원 강화, 공비재침을 막기 위한 확고한 보장을 요구하고 ②「유엔」에 대해 북괴의 침략적 만행을 규탄토륵 요구하며 ③정부에 대해 강력한 안보체제구축, 대미강경외교, 공무원의 기강 확립을 촉구하는 단일 결의안을 채택하는데 의견을 접근시켰다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인책문제에 관해서는 관계장관을 즉각 인책시켜야 한다는 야측의 주장과
인책은 시키되 이 문제를 대통령에게 맡기자는 여측의 주장이 맞서 합의점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기 3개 합의사항은 지난 「1·21사태」를 계기로 우리 국민이 한결 같이 정부에 대해서, 또 혹은 정부를 통해서 미국에 요망하고 싶었던 일이고, 국민여론의 소재를 정확하게 반영하여 집대성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무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1·21사건」에 대한 인책문제를 두고 오늘날과 같이 긴장된 시국하에 수일간이나 국회여·야가 토론을 거듭하면서 끝내 최종적인 합의에 도달치 못했다는 것은 못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우리 국회의 비능률적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인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책임」의 인책문제를 항상 정쟁의 도구로 삼아 오던 전통적 악폐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대저「1·21사건」과 같은 사태의 야기에 대해서 정부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책임」이지 결코 형사적 책임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고의나 과실유무를 불구하고 그와 같은 사태를 빚어낸 결과에 대한 책임인 것이요 본인이 최선을 다했는가의 여부는 별로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 민주헌정하에서의 상식이다. 「l·21사건」은 비록 그 직접적인 원인이 적이 우리 국가방위태세의 허점을 뚫은데 있다 하겠으나 그 기본원인은 어디까지나 국가기강의 문란에 있고 또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정부 및 국가의 위신이 크게 실추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대외적인 안전과 대내적인 안전에대해서 중책을 걸머지고 있는 부서의 장관은 그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정치도의상 마땅하다 할 것이다.
앞서 국방·내무 두 장관은 사표를 냈었지만 대통령에 의해 반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사표를 받지 않는 이유가 시국이 수습될 때까지 사임을 보류케 하자는 것인지 또는 「l·21사건」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계속 두터운 신임을 부여하겠다는 것인지 우리는 아는바 없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통령에 의한 사표반환이 있었다고 하여 이것이 곧 양장관의 책임해제를 결코 의미치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공비남침사건에 대한 정부인책 문제를 유야무야로 내버려둔다면 국가의 기강도 바로 잡혀지지 않으려니와 격앙했던 민심도 끝내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 여당이 인책문제에 대한 처리를 흐리멍덩하게 한다 해서 야당이 이
에 맞서 해임권고 결의를 내놓고 또 다시 국회가 격렬한 정쟁의 무대로 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런 싸움이야말로 중대한 시기에 있어서의 비생산적 당쟁으로서 국민의 빈축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인책이 있어야 하면서도 국회에서의 불신임 소동이 불가한 것이라 하거든 남은 것은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뿐이다. 우리는 대통령이 이 인책문제를 적시에 능숙한 솜씨로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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