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나무·돌 재활용 … 200억 아낀 순천박람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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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의 메타세쿼이아 길. 원래 88고속도로 변에 서 있다가 2년 전 도로 확장 공사 때 베어내려던 80여 그루를 박람회장으로 옮겨 심어 조성한 것이다. [순천= 프리랜서 오종찬]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개막 3주 만에 92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을 누리고 있다. 정원박람회는 지구촌 각국의 특색 있는 정원을 한자리에 꾸며 놓은 것이다. 관람객들이 눈치채기는 어렵지만 이번 박람회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정원의 상당 부분이 ‘재활용품’으로 꾸며졌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미국정원~스페인정원길 300m 구간에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이 나무들은 원래 전북 남원~경남 함양 구간 88고속도로변에 20년 이상 서 있었다. 키가 20m나 될 정도로 자랐지만 하마터면 2년 전 고속도로 확장 때 베어나갈 뻔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순천시 공무원이 즉시 달려가 뿌리를 파 트럭에 실어 온 것이다. 88고속도로 확장 공사장에서 가져다 박람회장에 심은 나무는 메타세쿼이아 80그루와 철쭉·홍가시·병꽃나무 등 모두 7340그루다. 플라타너스·졸참나무·깨죽나무처럼 나무가 빽빽한 공유림 또는 도로 가로수 중에서 솎아 오거나 기증받은 것을 합치면 27만7000그루에 이른다. 총 111만2000㎡의 박람회장·수목원·국제습지센터의 수목 50만 그루 중 55.3%를 차지한다. 돈으로 치면 100억원이 넘는다.

 순천만 박람회장을 장식하고 있는 자연석 2만5000t은 대부분 고속도로 개설 등 공공사업장에서 나온 것들이다. 목포~광양 간 고속도로 공사를 하느라 땅을 파헤치면서 나온 돌, 인근 도시인 여수역 공사장 땅속에서 나온 바위 등이 박람회장의 명당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다. 골칫거리 돌덩어리들을 활용해 25억원 정도의 예산을 아꼈다.

 박람회조직위원회의 최덕림 정원조성본부장은 “재활용된 수목이나 바위는 전문적인 조경용에 비해 모양이 썩 좋지는 않지만 제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어 비싼 돈 주고 사들인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박람회 기간 6개월 동안 좋은 것을 보여주자고 시민 세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게 순천만 박람회를 ‘재활용 박람회’로 만든 이유다. 이 때문에 정원박람회 특수를 기대했던 관내 조경수 관련 농가와 업체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이 밖에 박람회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많은 물건이 재활용품이다. 박람회장 전면의 울타리 가림막(높이 1.2m, 길이 840m)은 순천만에서 벤 갈대를 엮어 만들었다. 갈대는 봄철마다 한 번씩 베어줘야 하는데 그 부산물을 박람회장 시설물 재료로 활용한 것이다. 갈대 울타리는 나중에 썩으면 거름이 된다.

 지난해 여수박람회 때 사용했거나 쓰다 남은 물품 16억원어치도 순천만 박람회장에서 요긴하게 이용되고 있다. 개당 800만원짜리 그늘막 50개, 가로등 128개, 플라스틱 의자 4800개, 비옷 10만 개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루 700~800명이 교대로 근무하는 진행요원이 입는 바지 또한 여수박람회 때 남아돌아 창고에 처박아 뒀던 것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조직위원회는 예산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 나승병 박람회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정원박람회장 조성에 들어간 실제 공사비는 518억원인데 수목·바위나 물품 등을 재활용하지 않았다면 200억원가량의 예산이 더 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순천=이해석·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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